Chapter 1 : The Study Of ideologies and Its Immediate Tasks (요약)

 

· 이데올로기 일반 이론과 개별 현상들 간의 괴리

Literary scholarship is one branch of the study of ideologies. On the basis of the single principle it uses to understand its object, and the single method it uses to study it, the study of ideologies embraces all areas of man's ideological creativity. (3p)

이데올로기 연구의 토대는 맑시즘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이데올로기의 창조물 즉 과학, 예술, 윤리, 종교 등의 개별 항목들의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도 초기 단계이다. 왜냐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에 대한 일반 이론과 개별 이데올로기 현상에 대한 기본적이고 구체적인 연구 사이에 변화하고 흐릿한 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별 현상들을 사회학적 이해 없이 경제적 토대에 인위적으로 껴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영역들은 각각 언어, 언어에 대한 형태와 장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굴절에 대한 고유의 법칙을 지니고 있다. 물론 맑시즘은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지우려는 것은 아니다. 예술, 과학, 윤리, 종교의 개별성은 당연히 상부구조로서의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을 모호하게 만들면 안 되지만 또한 그 개별성도 그 법칙으로부터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맑시즘을 토대로 한 개별적이고 사회학적인 방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구조들의 세부 사항과 미묘함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우리는 이데올로기 체계의 특징과 질적 특이함을 이해하고 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문화 철학, 실증주의, 생물학, 경험론, 관념론을 기반으로 한 서유럽의 학문으로는 이러한 정의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이들은 언제나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이데올로기 현상에는 무력하기 때문이다.

 

· 관념론적 문화 철학과 인본주의적 실증주의의 위기

현대 서유럽 학계에서조차도 현실로부터의 문화 철학의 유리와 실증주의, 자연주의로부터의 부조리 양쪽 모두에 대한 불만족이 존재한다. 이는 어떤 종류의 통합의 부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려는 욕구가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에 부합하여 유럽 형식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유럽 형식주의는 총체적 일반화와 예술 개별 현상에 대한 무관심을 가지고 있는 실증주의와 관념론적 철학의 미학에 적대적이었다. 보슬러 학파 (The Vossler school)도 이와 비슷한 언어학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관념론적 철학을 언어와 언어의 역사의 구체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시도를 하였다. 문학사에서도 같은 경향이 진행되었다. 이런 경향들은 현상학과 직관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철학의 전형적인 징후는 하만(Hamann)의 저서 Ästhetik 등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 책들은 기존의 미학 책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철학 체계의 일반적인 요구보다는 예술 학문 자체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와 요구로 진행하려는 욕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네오 칸티즘의 추상적 관념 이론의 시대는 힘을 잃었고 변동성과 다양성에서 삶과 역사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이해하려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The "will to system" has obviously been replaced by the desire to master the concrete world of things and events without losing their living and meaningful unity. (6p)

 

우리는 유물론적 변증법만이 관념론과 실증주의의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부르주아 세계관에 절대적이었던(tertium non datur) 관념론과 실증주의는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불가사의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신비스러울 뿐인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It is necessary to fill the gap between the general doctrine of ideological superstructures and the concrete elaboration of particular problems. (6p)

다시 말해 유물론적 변증법이 왜 이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현상에 적용시켜 입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적용은 사회학적 견지를 유지해야만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사회학으로부터 숨기 쉬운 개별성도 무시해선 안 된다.

 

이데올로기적 모든 창조물(예술 작품, 과학적 성과, 종교적 상징과 의식)은 중요성, 의미, 내적 가치를 물질적 존재와 행동에서 구현하고 있다. 철학적 관점, 믿음 같은 것조차도 언어, 행동, 옷 등을 통해 물질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언어는 기호적 물질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물질과 그것의 조직화와의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연결은 더욱 더 유기체화 되었고 필수적으로 되었다.

현재 학계는 단지 개인의 이데올로기적 가치의 창조와 이해에 대한 생리학적 과정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고립된 개인은 이데올로기를 창조하지 못하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데올로기적 창조와 이해는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부르주아 학계는 물질적 환경의 복잡한 연결을 개인의 의식과 대응하는 의미라는 인위적인 연결로 대치시켰다. 의미와 의식은 부르주아 이론과 문화 철학의 기본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관념적 철학은 유물론적 실체로부터 자신들의 추상적 이론을 지키기 위해 의미와 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초월적 의식 혹은 일반적 의식이라는 개념을 상정하였다.

(이런 부르주아 학계 때문에) We are most inclined to imagine ideological creation as some inner progress of understanding, comprehension, and perception, and do not notice that it in fact unfolds externally, for the eye, the ear, the hand. It is not within us, but between us. (8p)

 

· 이데올로기 연구에서의 당면한 두 가지 문제들

이데올로기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에서 완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인식과 연구의 통합되고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접근 가능하다.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인간의 사회적 환경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현상의 물질적 존재들은 물리적이거나 자연적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생리학적 혹은 생물학적 개인은 이데올로기적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사회적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다. 한 개인 내의 사색, 감정 혹은 쾌락은 이데올로기적 현상이 아닌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관적 심리학과 생리학, 생물학은 이데올로기적 대상의 의미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 연구에 두 가지 기본 문제를 제공한다.

(1) problems of the characteristic features and forms of organized ideological material as meaningful material; (2) problems of the characteristics and forms of the social intercourse by which this meaning is realized. (9p)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은 이데올로기적 실제의 반영과 굴절에 대한 맑스주의 교리에 완전성과 정밀성을 제공할 것이다.

 

· 조직화된 이데올로기적 물질의 문제

The primary problem in the first set is the problem of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organized ideological material, i.e., the problem of the characteristics of ideological object as opposed to (1) physical, natural bodies and (2) to the instruments of production and (3) to consumer goods. (9p)

자연주의적 실증주의와 기계론적 유물론은 이데올로기적 대상과 첫 번째 유형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곳에서 자연적 기계적 규칙성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도로 발전된 과학, 문학 같은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데올로기적 창조물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때때로 침투하는 맑스주의를 보이는 실용주의적 실증주의는 두 번째 유형과의 차이점을 무시한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적 대상을 생산 기능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생산 기능은 특정한 의미성이 부족하다. 그것은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반추하지 않는다. 다만 외적인 목적을 지닐 뿐이다. 이런 실용주의의 관점의 허점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리글(Riegl)은 예술 작품을 실용적 목적, 날 것의 재료 그리고 기술 간의 투쟁으로 발현된 명확하고 의도적인 예술 의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The concepts of artistic volition (Kunstwollen : 예술 의지) and the "resistance of the material," to which are added utilitarian purpose (if there is one) and technique, are presently the basic concepts of West European formalist art scholarship. (10p)

기술은 창조에 대해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예술에서 오직 변화시킬 수 있는 인자를 가진 것은 예술 의지뿐이다. 예술 의지는 무기적 간결함, 몸에 대한 진실성, 유기체보다는 무기체 형식의 선호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예술 의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 실용주의적 실증주의는 현대 유럽 예술 학문에서 신뢰를 잃고 말았다. 이데올로기적 대상의 특수성과 이데올로기적 유기적 물질은 모든 곳에서 이해되고 알려졌다.

물론 맑스주의는 이 예술 의지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맑스주의는 실증주의에 대한 현대 예술 학계의 비판을 받아드려야 한다. 그리고 생산 기능으로부터 의미를 생산하고 반영하고 굴절하는 이데올로기적 대상들 사이의 차이를 면밀히 분석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비재와의 유사성으로 이데올로기적 대상을 보는 이론이 널리 퍼졌다. 이 접근 방식은 부패한 부르주아 작품을 실질적으로 관통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것에는 이데올로기의 쾌락주의적 이론과 부합됐다. 개인의 쾌락과 경험의 대상에 대한 예술 작품의 개념은 필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현상을 개인 소비 생산과 일치시키는 경향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데올로기적 생산과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은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고립되고 생리학적 유기체 내에서 인식되는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볼 때 아무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음식을 섭취하거나 옷이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은 이데올로기적인 현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개인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신조는 맑스주의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맑스주의에 의해 거부된 이 신조는 형식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물질과 의미

이데올로기적 대상을 자연적 대상, 생산 기능, 소비재와 대치되는 것으로 보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한 결론 후에 우리는 이데올로기 자체의 세계를 더욱 더 연구해야한다. 이런 연구는 추상적 의미로부터가 아니라 구체적인 유물론적 실제, 사회적 의미의 관점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관점의 연결은 매우 유기적이다. 예를 들어 예술의 의미는 물질적 몸체의 세부 사항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대체가 가능한 과학적 작품과는 달리 예술 작품은 최소한의 요소를 제외하고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이는 특정한 몸체와 의미가 필연적으로 엮여 그것만의 예술적 의미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어느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의미만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수행하는 사회적 연결은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조직되고 이끌어진 행동과 상호작용의 합은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의 두 번째 문제인 이데올로기적 상호 교류의 형태와 유형의 문제는 거의 연구가 안 되어졌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삶을 의미에 병치된 하나의 의식으로서 보는 관념론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이는 이데올로기적 상호 교류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과학적 상호 교류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예술적 상호 교류의 형태는 외부의 상황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양해지고 달라진다. 예술적 상호 교류의 형태는 예술 작품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서유럽 예술 학회의 연구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청중, 독자 같은 외부적 상황이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데올로기적 환경

우리가 지금까지 열거한 문제 말고도 현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 연구의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 환경의 문제라고 부른다.

사회적 인간은 이데올로기적 현상에 둘러싸여 있다.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구성한다. 인간의 의식은 바로 이 환경에서 생동하고 발전한다. 그런데 인간의 의식은 존재들을 직접으로 접촉하지 않고 둘러싸여 있는 이데올로기 세계의 매개를 통해 접촉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환경은 개개인의 의식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통해서만이 사회 경제적, 자연적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환경은 끊임없이 활발한 변증법적 생성의 과정에 있다. 그래서 반박은 언제나 존재하고 새로운 것이 다시 생성된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독특하고 완전히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존재한다. 이런 특성을 지니는 이데올로기적 환경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한다. 그리고 의식과 행동은 또한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결정하는 순환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환경에 대한 개념이 맑스주의에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맑스주의 말고 다른 사상들 즉, 문화 철학, 실증주의, 자연주의, 실용주의는 이 이데올로기적 환경에 대한 개념을 왜곡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맑스주의자들 마저도 이데올로기적 환경의 중요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데올로기 세계의 개별 존재가 경제적 요인에 의해 직접적으로 결정된다는 순진한 생각에 빠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맑시즘 이데올로기 연구가 직면한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이 문제들에 대한 철저하고 깊은 완성만이 맑시즘의 사회학적 방법 내에서 요구되어지는 파생으로 이끌 것이고 이데올로기적 현상의 개별 구조의 세부사항을 숙달하게 만들 것이다.

by 그루브21 2014. 12. 5. 19:24

 

테리 이글턴은 러시아 형식주의, 신비평을 비평함으로서 자신만의 문학 이론을 구축한 문학 평론가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의 대표 격인 로만 야콥슨의 주장에 따르면 문학은 일상어에 가해진 조직된 폭력을 표현하는 글이다. 다시 말하면 익숙한 일상어를 낯선 문학적 언어로 바꿔 독자로 하여금 권태로운 일상을 다시 낯설게 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 소명이라는 것이다. 이글턴은 이런 그의 주장을 일부분 받아들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러시아 형식주의가 형식에 비해서 내용을 홀대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한다. 여기서 내용은 문학의 시대·역사적인 맥락과의 관계를 말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그런 관계는 비평가의 일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문학성에서 일탈의 기준이 되는 일상 언어가 그 기준이 모호하다고 이글턴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들의 일상 언어와 부두 노동자의 일상 언어가 같은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기준이 모호한 일상 언어를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글턴은 신비평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한 입장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다가간다. 신비평은 문학 작품의 작가나 시대 배경 때문에 나타나는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직 문학 그 자체의 텍스트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학 비평의 사조이다. 그러나 이글턴은 이런 신비평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는 소극적 보수주의 운동으로 간주하였고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가 넓은 편견과 믿음으로 엮여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런 편견과 믿음이 간혹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게 보이지만 사실은 계층에 따라 놀랍도록 일관된 일치성이 보인다고 그는 주장한다. 결국은 각 계층의 이데올로기에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글턴의 이런 이야기는 맑스주의의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철학에서 인식론과 경험론이 오랜 대치를 보인 것처럼 문학 비평도 맑스주의적 비평과 비맑스주의적 비평(시대·역사적 맥락과는 상관없는 보편적 가치를 찾는)의 오랜 대립의 역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by 그루브21 2014. 1. 2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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