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골딩의 장편 소설 파리대왕은 일·이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모멸을 담은 작품이다. 또한 작가 자신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직접 참여한 해군 출신이라는 점은 이 책이 방관자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직접적 참여에 의해서 생산된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의 주제 중에 주목할 것 중 하나는 민중의 부정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중은 사실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회색적인 분자를 말한다. 이런 주체적이지 않은 수동적인 민중들은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에 따라 자신들의 색깔을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지도자가 랠프인지 아니면 잭이냐에 따라서 그 집단 구성들의 모습과 행동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히틀러가 인종우월주의를 바탕으로 세계 지배를 주장했을 때 독일 민중들은 몇몇 양심적인 소수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실질적 지지자들이었다는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회의적인 세계가 계속 유효하다고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텍스트에서의 일방적인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결국 파괴의 상징인 군인이었다는 점에서 이 종식은 일시적이라고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의 출간은 2차 세계대전이 종식 된지 얼마 안 지난 1954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 시대 사람의 불안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by 그루브21 2014. 1. 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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