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모범적이고 순수한 형식으로 집시 기질과 침울한 깊이를 거부하고, 타락의 심연과 관계를 끊었으며 타락한 자를 물리친 작가였다.’

 

우린 어쩌면 그런 심연을 거부하고 품위를 얻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무리 돌아서려고 해도 그 심연이 우리를 유혹하는 거야.”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에서

 

인생은 해야만 한다하고 싶다라는 의지와 욕구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의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가는 일반적으로 의지와 욕구 사이에서 욕구 쪽으로 치우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쉽다. 예술가를 단지 자기 하고픈 것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도 이런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더 높은 단계의 예술의 질을 추구할수록 단지 욕구뿐만 아니라 그 욕구를 조절하고 절제할 의지도 극도로 요구되어 진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훌륭한 예술가의 삶에서 진리를 묵묵히 추구하는 구도자의 삶의 모습이 발견되어지는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의 아센바흐는 바로 그런 예술가였다. 그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는그런 예술가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구도자적 인생에 무언가 다른 것을 입히고픈 욕구를 느낀다. 이 욕구는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으로 막연히 표출된다. 그리고 그는 여행을 통해 그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 발견한다. 아센바흐는 타치오라는 미소년을 통해 인지하지 못했던 욕망을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음은 아센바흐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는 경멸의 대상이었던 화장을 진하게 한 노인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대치시켜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육체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힘을 아센바흐는 다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by 그루브21 2014. 2. 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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