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주적이 있다는 것은 그 주적외의 집단을 단결시키는 작용을 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들에게 주적을 제압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그와는 상관없는 생각도 수면위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광복 운동에서 김구와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강경파와 외교파로의 분열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두 집단의 다름은 일제 강점기에는 그리 강하게 들어나지는 않았지만 독립 후에 목표가 성취되자 그 다름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인간으로서의 단결과 분열의 속성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밝혔듯이 스탈린 체제를 직접으로 풍자하기 위해서 만든 작품이었지만 우리는 꼭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 스탈린보다는 보다 가까운 시간의 다른 인물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남을 억압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고발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작가 자신도 식민 관료로서 피식민지 국가의 사람을 억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경험도 이런 작품을 탄생하게 만든 계기로 작용했음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동물농장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의 필연적인 작품이었던 것이다.

동물농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복서라고 생각한다. 복서는 강직하고 부지런한 일반 서민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무비판적이라 오히려 권력 계층에게 이용당하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언뜻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 운동에서 <근면·자조·협동>의 기치로 국민운동을 벌이는 모습에 호응하는 국민들 모습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새마을 운동에 대한 평가는 논란이 많다. 새마을 운동이 우리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순수한 운동이었는지, 혹은 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당했던 운동이었는지는 좀 더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런 복서의 무비판적인 협조는 최고 권력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었다. 최고 권력자에게 우리의 삶을 위탁하는 모습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무조건적인 호응보다는 상대적이고 권력과의 유동적인 긴장이 필요하다. 결국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한 이유도 어떤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긴장 때문이지 않은가.

by 그루브21 2014. 1. 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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