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Aesthetic Visualizing of Time/Space: The Chronotope (요약)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서사시는 절대적인 과거를 묘사하는 세계의 이동을 특징으로 갖는 완성되고 종결된 포괄적인 형식이다. 서사적 세계의 관점에서 시작’, ‘처음’, ‘창립자’, ‘조상’, ‘일찍이 일어난 것등은 단지 시간의 범주가 아니라 극한 단계까지 안정된 시간의 범주이다. 진정한 선함은 과거에만 일어난다. 서사시의 절대적 과거는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한 유일한 원천이고 모든 선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서사적 과거는 상대성, 즉 점진적인 현재와 연결될 수 있는 시간적 과정이 부족하다. 다시 말해서 경계선에 의해 모든 차후의 시간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계선을 파괴하는 것은 장르로서의 서사시의 형태를 파괴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공간에는 우리가 미래를 엿볼 구멍을 찾을 엄두를 내기조차 힘든 확정성과 닫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특성의 서사시의 과거는 국가적 전통의 형식에서만 보존되고 나타나진다. 서사시는 전적으로 전통에 의존한다. 서사시의 담론은 전통에 의해 물려받은 담론인 것이다. 그 때문에 절대적 과거의 서사시의 세계는 개인적 경험으로 접근할 수 없고, 개인적 관점 혹은 평가를 허락되지 않는 전통적이고 성스러운 것이 되었다.

이런 관여될 수 없는 장르에서의 개인은 완결된 존재이다. 그러나 완벽하다는 것은 가망 없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그 자신과 일치를 이루고 완벽히 자신을 표면화시킨다. 그의 진정한 본질과 그의 외적 징후 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서사적 거리감의 파괴와 관여될 수 없는 면에서 현재의 비결정적인 사건의 구역으로의 개인 이미지의 이동이 이루어진다면 소설과 모든 문학에서 개인 이미지의 근본적인 재구성이 이루어질 것이다. 민속 문화와 소설에 대한 대중-희극적 원천은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웃음은 서사시의 거리감을 파괴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자유롭고 친숙하게 조사하였고 또 그를 뒤집었고, 표면과 중심 사이, 가능성과 실제 사이의 차이를 노출시켰다. 인물은 더 이상 그 자신과 일치시키는 것을 그만두었고 또한 구성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우리는 문학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의 관계의 본질적인 결합을 크로노토프(chronotope)라고 부를 것이다. 이 용어는 원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때문에 소개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의 용어를 은유적으로 차용할 뿐이지 큰 연관은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용어가 공간과 시간의 불가분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로노토프에서 공간적, 시간적 지표는 하나의 구체적인 전체로 융합된다. 시간은 짙어지고, 예술적인 시각을 획득한다. 그리고 공간은 시간, 구성, 역사에 반응하게 된다. 이런 상호 교차가 크로노토프를 특징짓는다.

문학에서 크로노토프는 본질적인 포괄적 중요성을 갖는다. 장르와 포괄적 구별을 결정짓는 것은 크로노토프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형식적 구성 범주인 크로노토프는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미지도 결정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시간과 공간을 예술적으로 고정시키는 방법들을 가진 세 가지 소설적 유형이 발달되었다. 다시 말해서 세 가지 소설적 크로노토프가 있었다. 이것들은 매우 생산적이고 유연했고 18세기 중반까지 모험 소설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

 

i) 그리스 로맨스 : 시련의 모험 소설

갑자기바로 그 순간에라는 말은 이 시대의 유형을 특징짓는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고유의 특정한 논리를 가지는 순전한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무작위의 만일의 사태이다. 즉 시간에서 무작위적 괴리의 논리이다.

시간의 이런 유형에서는 개인은 단지 완전히 수동적이고 변하지 않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주성을 빼앗긴 개인인 것이다. 그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공간적인 종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리스 로맨스에서의 모든 인물의 행동은 공간(탈출, 박해, 탐색)을 통한 강요된 움직임에 환원되었다. 결국 인간의 공간을 통한 움직임은 그리스 로맨스의 크로노토프에 대한 기본적 색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맨스에서의 인물은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운명이 정해준 것을 견딘다. 인간 정체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적 암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 로맨스는 계급의식을 선행하는 민속 문화와 긴밀한 연결 관계를 가진다. 그리스 로맨스에서 아무리 인간의 정체성이 빈곤하게 될지라도 그것 안에는 민속적 인류의 귀중한 알맹이가 보존되고 있다. 그들은 자연과 비인간적인 힘 사이의 투쟁에서 파괴될 수 없는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을 언제나 느끼고 있다.

 

ii) 일상생활의 모험 소설

인간의 민속적 이미지는 변형과 정체성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결합은 대중 민간설화에서 매우 명료하게 보인다.

변형은 위기의 매우 중요한 순간에서 개인의 삶의 전부를 묘사하는 방법을 위한 토대로서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삶의 과정에서의 다양한 시대와 단계로서 그 안에 통합되는 이미지를 제공받는다. 우리가 얻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위기와 재탄생이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그리스 로맨스의 플롯과 아풀레이안(Apuleian) 플롯이 구별되는 것이다. 아풀레이우스가 묘사하는 사건은 주인공의 삶을 결정한다. 물론 전체로서의 전기적 삶이 아니라 몇몇 위기의 순간 묘사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의 삶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자주성은 주인공 그 자신과 그 고유의 인간성에 속하게 된다. 주인공이 겪는 연속적인 모험은 그의 정체성의 단순한 확인을 야기하지 않고 정화되고 재탄생된 주인공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개인의 삶의 과정을 그의 실제적 공간의 과정, 길과 융합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길 그 자체는 친숙한 지역을 통해 확장되었고 마침내 장르의 역사성 안에서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는 독특한 소설적 크로노토프가 생성되었다. 그것의 중심은 민속 문화이다. 민속에서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삶의 길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 되었다.

 

iii) 고대 전기문학과 자서전

자서전, 전기문학의 고전적인 형식은 문학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행동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반대로 그런 형식은 시민적, 정치적 행동 혹은 공공성을 부여하는 인간성에 대한 칭찬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적인 크로노토프라기 보다는 외적인 크로노토프이다. 이 진정한 삶의 크로노토프에서 삶과 인간 이미지의 한계는 그것의 특수함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 진정한 삶의 크로노토프는 공공 광장(the agora)에 의해 구성된다. 고대에서는 개인과 그의 삶의 자서전적, 전기문학적 자의식은 공공 광장에서 발가벗겨지고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광장은 어떤 상태를 구성하게 된다. 그것은 최고의 법정, 과학과 예술의 전체, 그것에 참여하는 전체 사람을 말한다. 그 안에서 가장 고상한 범주들이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보이게 되고, 공적인 시민의 승인의 도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시대에서 사람의 이미지는 안 들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왜곡되었다. 이제 그의 공공적 기원을 생산할 수 있는 통합과 총체를 잃게 되어 그의 자의식은 통합된 크로노토프를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진실성을 잃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게 되었다.

크로노토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소설의 기본적인 서술에 대한 중심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크로노토프는 서술의 매듭이 묶이고 풀리는 장소인 것이다. 이제 크로노토프에 의해서 시간은 감지할 수 있고 보이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크로노토프는 소설에 형체를 부여하는 힘으로서 구체화하는 묘사를 위한 중심으로서 나타난다. 모든 소설의 추상적 요인, 즉 철학적 사회적 일반화, 생각,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은 크로노토프에 끌리게 되고 예술의 상상하는 힘을 작동하게 만든다. 이것이 크로노토프의 묘사적 의의인 것이다.

 

16. The Serio-Comical Tradition of The Menippea (요약)

 

고대의 요소는 끊임없는 재생, 즉 현대화 덕분에 보존된다. 장르 안에서 언제나 낡고, 새로운 것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장르는 문학의 전개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갱신하게 된다. 장르는 현재를 살지만 언제나 그의 과거, 시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르는 문학의 전개의 통합과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소설적 장르는 세 가지 근본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서사시, 수사학, 카니발성이다. 특히 카니발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지한척하는 희극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영역은 두 가지 장르로 나누어진다. 소크라테스(Socratic)식 대화법과 메니피안(Menippean) 풍자이다.

메니피안 풍자는 고대 기독교 문학과 비잔틴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것은 발전을 계속 지속해왔다. 그래서 메니피안 풍자는 문학에서 카니발 감각을 위한 주요한 경로가 되었다.

메니피아는 자유스런 플롯과 철학적 독창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것의 주인공이 역사적·전설적 인물이라는 것은 어떤 방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우리는 메니피아보다 더 자유스러운 장르를 발견할 수 없다.

장르로서 메니피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환상과 모험의 대담한 사용이 내적으로 동기화되었고, 정당화되고,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목표에 헌신되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환상은 진리의 긍정적인 전형을 위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유발하고, 무엇보다도 시험하는 방식으로서 작용한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은 놀라운 삶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때때로 환상은 모험 이야기의 특징을 채용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환상은 진리를 야기하고 시험하는 관념적 기능에 종속된다. 한 사람을 시험하는 것은 세계에서 그의 철학적 위치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니파아의 내용은 세계 내의 진리의 모험에 관한 것이다.

또 메니피아는 환상과 상징, 신비스런 종교적 요소를 극단적인 사실주의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 진리의 모험은 길, 사창가, 도둑 소굴, 여관, 시장, 감옥, 에로틱한 잔치 등의 장소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이미지는 극한 표현으로 세속적인 악마, 타락, 천함, 상스러움과 충돌하게 된다. 이런 메니피아의 대화성은 도스토예프스키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은 메니피아에서 독창성과 환상적인 요소의 대담성은 철학적 보편성과 가능한 넓은 범위로 세상을 보는 수용성과 결합되었다. 그리고 메니피아는 극단적인 질문의 장르이다. 그것에서 철학적 위치는 시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세, 종교 개혁의 시대를 통해 메니피아는 아래 세상에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르네상스의 유럽 문학에 널리 퍼진 죽은 이의 대화(dialogues of the dead)라는 특별한 장르가 생기는데 영향을 끼쳤다.

메니피아에서 실험적인 괴기함은 그것의 외형을 고대 서사시와 비극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괴기함은 삶의 관찰된 현상의 척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라블레, 스위프트, 볼테르 등에 의해서 메니피아의 이런 특성이 계승되게 되었다.

메니피아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비정상적인 도덕적, 정신적 상태의 묘사가 나타내게 되었다. 이 현상은 단지 주제로서 좁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 백일몽, 정신 이상은 개인과 그의 운명의 서사시와 비극의 요소를 파괴한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서 다른 누군가와 다른 삶의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의 종결된 자질을 버리는 것이다. 꿈은 서사시에도 흔하지만 그곳에서는 예언적이고 충고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것이다. 결국 총체와 종결된 자질의 파괴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적 관계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그리고 스캔들과 괴상함(scandals and eccentricities), 그리고 부적절한 말도 메니피아의 이런 특성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메니피아는 날카로운 대조와 모순적 결합으로 가득 차있다. 예를 들어 고결한 창녀, 노예가 되는 황제, 도덕적 몰락과 정화 같은 갑작스런 이행을 메니피아는 좋아한다.

그리고 메니피아는 자주 꿈 혹은 여행의 형태로 구현되는 사회적 유토피아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때때로 유토피아적 소설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 유토피아적 요소는 다른 모든 장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장르가 중간에 끼워지는 것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도 메니피아의 특징이다. 끼워지는 장르는 중편 소설, 편지, 웅변적 연설, 심포지엄 등을 말한다. 이 끼워짐의 과정에서 패러디와 객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끼워지는 장르의 존재에 의해서 메니피아의 다채로움은 또다시 강화된다. 여기서 합쳐지는 것은 말에 대한 새로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메니피아의 마지막 특징은 당면한 논쟁적인 핵심에 대한 관심이다. 그래서 이것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핵심을 날카롭게 울리는 고대의 기자적인 장르인 것이다. 예를 들어 루시안의 풍자들(The satires of Lucian)은 공공연하고 숨겨진 철학적, 종교적, 이데올로기 등의 논쟁들과 당시대 혹은 최근에 사망한 공적 인물들의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그것들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새로이 나타나는 사회 내의 유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특징을 갖는 메니피아는 고결이라는 고대 이념을 구성하는 시대적 규범이 파괴되고, 수많은 이질적인 종교와 철학 내에서의 투쟁이 강렬해진 시대에서 형성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종교의 준비와 형성 과정의 시대에서 형성되었다. 바로 기독교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다른 면은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부합되어 역할을 수행하는 인간 삶의 외적인 위치를 평가 절하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스토아학파 철학자와 루시안(Lucian), 아푸레이우스(Apuleius)의 문학 작품의 영향이 컸다. 이것으로 인하여 인간과 그의 운명의 서사시와 비극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메니피아라는 장르는 그 시대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되었다. 그곳에서 삶의 내용은 내적 논리를 가지는 안정된 형식에 부어졌고, 더불어 그것의 모든 요소의 연결이 보장되어졌다. 이 때문에 메니피아는 유럽 소설의 역사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by 그루브21 2014. 12. 8. 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