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기 자본주의 논리와 바흐친 학파

 

제임슨(Fredric Jameson)은 그의 저서 포스트모더니즘-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에서 현대 사회를 그의 맑스주의(Marxism)적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그의 논지에 따른 현대 사회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역사적 과거와의 단절, 상품화 자체의 소비, 고급문화와 하위문화 사이의 구별의 사라짐, 욕망의 매몰, (디지털)기술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논리를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이 책은 90년대 초반(그것은 80년대 저술되었다는 것이다.)에 쓰였기 때문에 이미 30년에 가까운 시간적 간격이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유럽의 정신적-물질적 문화를 토대로 두고 있는)이라는 자본주의가 가장 고도로 발달한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젝(Slavoj Zizek)이 그의 최근 저서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재귀적으로만 지향하는 개인들을 비판한 것과 같이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는 현재 이 시대에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 폰(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보라. 보편성만 인정받는다면 전 지구적으로 유행되는 것은 순식간이게 되었다. 혹은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보라. 유명인사들의 동참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진 기부 운동은 최근까지 내 자신의 페이스북(Facebook) 친구를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었다.)으로 인한 지구라는 공동체로의 통합화 현상을 통해 이제는 거리적 의미는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후기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바흐친(Mikhail Bakhtin)이라는 이론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런 질문의 동기는 매우 간단하다. 바흐친이 말하는 대화주의 또는 다성성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특히 진보주의자가 말하는) 우리의 역사적 과정의 희망적 방향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질문을 하는 자들은 우리의 역사도 바흐친의 관점대로 흘러야 한다는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역으로 우리 사회에는 바흐친이 말하는 단성적인 부분들이 아직도 상당부분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예를 들어 현대 문화의 주요한 특징 중에 하나인 영상물도 바흐친의 관점에서 보면 단성적인 문화의 산물이 될 수 있다. 그 영상물의 내용이 바흐친이 제시하는 소위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y)의 작품 같은 다성성의 특징을 함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을 제시하는 형식이 대부분 극히 직접적(일방적)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단성성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더불어 그것이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여러 특징과 결합될 때에는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바흐친 그렇게 소중히 여겨온 대화주의(역사성)는 그곳에서 소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시대적 상황이 역으로 바흐친을 소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 내에서 바흐친을 호출하는 자들에게는 그가 현대 시대에게 진정한 실천적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는 지를 입증해야만 하는 의무가 부과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행위는 단지 일시적 심리적 위안을 위한 것이고, 스스로 자신들이 가식적임을 입증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심리적 위안과 실질적·실천적 위안은 분명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반대로 그들의 방향은 바흐친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분석하는 것으로 지향되어야 한다. 바흐친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길은 또 다른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장을 여는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현실적 맑스주의

 

바흐친 학파는 프로이트주의를 비판한 Freudiansim: A Critical Sketch부터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인 The Formal Method in Literary Scholarship, 맑스주의적 언어철학을 확립한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의 작품을 통해서 주체성, 언어관, 이데올로기 개념을 확립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이상으로 하는 대화주의의 개념을 확립한 Problems of Dostoevsky's Poetics, 유럽 소설 다성성의 근본적인 기원을 탐구한 The Dialogic Imagination: Four Essays, 바흐친 이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카니발 이론의 Rabelais and His World를 통해 실질적 문학 연구와 정치적 비평을 펴나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의 저작들 모두를 관통하는 기본 사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나타낸다면 통합된 주체에 대한 믿음이다.

정말로 바흐친은 이 세계를 통합된 주체를 가진 개인들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자신의 계급성을 표출하는 곳으로 보았다. 개인들이 통합된 주체적 인간이 아니면 그가 매우 중시하는 사회학적 관점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그는 의식을 사회적인 공동의 것으로 보는 것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All the fundamental and essential acts in human life are brought about by social stimuli in conditions of a social environment. FACS 22p) 이는 맑스(Karl Marx), 루카치(György Lukács), 알튀세(Louis Althusser)에 이르는 해방적 주체에 대한 열망을 바흐친도 역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바흐친의 의식의 공동화라는 설정은 하위 주체의 의한 긍정적 미래 창조라는 또 다른 설정의 근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특히 Rabelais and His World에서 잘 드러난다.) 이점은 바흐친, 그도 역시 맑스주의라는 넓은 범주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본 지표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과는 분명 다른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맑스, 루카치, 알튀세는 각각 그 설명의 방법과 양상은 다르지만 오류의 인식에 대한 초월 즉, 목표(혁명, 과학)에 대한 우선 가치를 두었지만 바흐친은 목표보다는 그 과정에 중점을 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에서 기호 체계 내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설명(differently oriented accents intersect in every ideological sign. Sign becomes an arena of the class struggle, MPL, 23)은 이런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계급들 간의 투쟁마저도 투영시키는 언어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맑스주의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언어의 특징에 대한 분석을 통해 결국 그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투쟁의 결과 혹은 지향이 아니라 계급투쟁 그 자체 즉, 인간성이라는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이 본질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듯이 이 계급투쟁은 인간이 없애거나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인간 사회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그는 주장한다. 물론 Problems of Dostoevsky's Poetics에서 드러나듯이 지배 계급의 담론의 일방적인 독점은 해체되어야하고 이제까지 억압되었던 계급들에게도 그들의 몫이 주어져야 된다는 맑스주의의 기본 전제를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Dostoevsky carried out, as it were, a small-scale Copernican revolution when he took what had been a firm and finalizing authorial definition and turned it into an aspect of the hero's self-definition.... Not only the reality of the hero himself, but even the external world and the everyday life surrounding him are drawn into the process of self-awareness, are transferred from the author's to the hero's field of vision.... Alongside and on the same plane with the self-consciousness of the hero, which has absorbed into itself the entire world of object, there can be only another consciousness; (TBR 92)

 

요컨대 바흐친은 맑스주의적 지향은 소중히 간직하되 현실적 간격(조건)은 인정하는 현실적 맑스주의자였던 것이다. 이런 점은 그가 Rabelais and His World에서 언뜻 보면 민중 중심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허락받고 일시적인 타협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3. 동시 기원적 역사성

 

바흐친이 말하는 대화주의는 역사성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대화주의는 낙관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믿는 진보주의자인 것이다. 그는 인류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서 미래를 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경향은 초기 맑스주의의 다른 이론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맑스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소멸되고 공산주의가 그것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믿었다. 자본론(Das Kapital)에서 그는 성경의 그리스도(Christ)의 말인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른다.’를 인용하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하위주체(노동자)들의 인식적 깨달음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맑스는 자본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공황을 예언한 것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을 수용한다하더라도 맑스가 공산주의를 이상적 정치·경제 체계로 본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리고 루카치는 맑스의 그런 믿음에 계승하면서 그것을 문학 이론에 빗대어 발전시켰다. 그는 리얼리즘(realism) 이론을 통해 에밀 졸라(Emile Zola), 사뮤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등의 작품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그들의 문학이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혹은 비관적으로 묘사했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그는 역사 내에서 필연적인 당파성(objective partisanship)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들이 그것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맥락을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바흐친의 역사성의 개념은 그의 저서 The Dialogic Imagination: Four Essays에서 구체화되었다. 대화주의, 다성성을 표상하는 근대의 문학 형식인 소설도 역사적인 대화를 거쳐 왔고, 그것은 19세기 들어 주요한 문학 장르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메니피안(Menippean) 풍자를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대화성의 기원으로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메니피안 풍자의 시대적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It(메니피안 풍자) was formed in an epoch when national legend was already in decay, amid the destruction of those ethical norms that constituted the ancient idea of 'seemliness'(beauty','nobility'), in an epoch of intense struggle among numerous and heterogeneous religious and philosophical schools and movements, .... It was the epoch of preparation and formation of a new world religion: Christianity. (TBR 192)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바흐친은 사회·역사적 맥락이 당대 문학 형식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9세기 소설이 당대 주요 문학 형식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근대화에 의해 비롯된 자아의 확장이라는 시대적 맥락과 관계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은 라블레(François Rabelais)와 르네상스(Renaissance)와의 관계와 같이 바흐친에게는 중심 체계가 유연해지는, 대화성이 극대화되는 시대가 이상적인 시대인 것이다. 이런 그의 이상성은 카니발(carnival)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바흐친도 역시 루카치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런 반영론(Reflection theory)이 지나치게 단순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는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the correspondence established itself remains without any cognitive value until both the specific role of the "superfluous man" in the artistic structure of the novel and the specific role of the novel in social life as a whole are elucidated. Surely it must be clear that between changes in the economic state of affairs and the appearance of the "superfluous man" in the novel stretches a long, long road that crosses a number of qualitatively differently domains, each with its own specific set of laws and its own specific characteristics. (MTPL 18)

 

바흐친은 그의 이론이 실천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특히 마이클 가디너(Michael Gardiner)는 그람시(Antonio Gramsci)를 통해서 그의 이론이 구체성이 결여된 이론이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헝가리 혁명(1956-os forradalom)의 실패로 가장 큰 정치적 위기에 빠졌던 루카치가 장르 비평을 한 것처럼 바흐친도 문학 비평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열망을 현실에 반영하려 했다. (한편 문화 비평가 이택광은 바흐친이 루카치의 부르주아(bourgeois)적 문학을 비판하기 위해 문학에서의 민중성을 더욱 강조하였다라고 말한다. 이는 맑스주의 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졌음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라블레를 재평가 했다. 그런 재평가를 통해 스탈린주의(Stalinism)와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에 대항하려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임무를 역사성의 필연성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았고 그것을 수행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바흐친은 역사성(리얼리즘)을 바라보는 관점은 루카치와 사뭇 달랐다. 이택광은 바흐친이 루카치의 소설론에서의 일률적인 진행론을 비판하기 위해 동시 기원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로 바흐친은 메니피안 풍자 외에도 그리스 로맨스, 아풀레이안(Apuleian) 플롯, 고대 전기 문학을 근대 소설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이미 근대 소설이 지금의 틀을 갖추기 훨씬 이전부터 그 가능성은 안보이지만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이 점은 그가 단순한 진보주의자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에게 이상적인 인간은 도착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내달리는 육상선수가 아니라 언제나 순간순간의 화음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들어내려는 재즈 뮤지션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류 최고의 음악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기 때문에, 발굴해 내야하는 것이다.

 

4. 카니발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문화

 

바흐친이 Rabelais and His World에서 말하는 민중성 혹은 카니발성(carnivalesque)은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하는,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의 특징 중 하나인 역사성의 상실의 징후와 유사한 면이 있다. 바흐친이 말하는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에서의 공식 문화에 대한 조롱과 야유를 위한 행위와 제임슨이 말하는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인 역사성의 상실로 인한 결과는 외향적으로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이론에 대한 근거, 평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어왔기 때문에 서로 다른 범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합의이다. 실제로 바흐친은 카니발성을 우리가 지향해야할 가치로 보고 있고,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를 실패한 것으로 분석하고 그것으로부터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는 점에서 이 두 이론은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임슨이 말하는 역사성의 상실을 기존의 경전, 전통, 고전에 대한 완전한 부정으로 본다면 어떨까? 혹시 바흐친이 말하는 공식 문화에 대한 조롱과 야유가 궁극적으로 간다면 제임슨의 역사성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편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특징 중 하나인 고급문화와 하위문화 사이의 구별의 사라짐을 미학적 대중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학적 대중주의는 모더니즘(Modernism)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다고 한다. 제임슨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호의 농사꾼의 신발과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에서 비교되듯이, 본격 모더니즘 시대에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제는 텍스트나 환영이 된 대상세계 자체와 주체의 기질 속에 생겨난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다. 가장 뚜렷한 추세가 바로 정서의 퇴조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현재 시점에서 주체가 소멸된 것에서 그 근원을 따질 수가 있다. 그럼으로써 표현이란 개념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151)

 

이를 통해 정서의 퇴조역사성의 상실고급문화와 하위문화 사이의 구별의 사라짐이라는 또 다른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특징과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와 함께 제임슨이 말하는 다른 특징들 즉, ‘상품화 자체의 소비’, ‘욕망의 매몰’, ‘(디지털)기술들도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 이런 특징들이 모여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상품화 자체의 소비’, ‘욕망의 매몰’, ‘(디지털)기술이라는 현대 문화의 특징은 우리에게 제임슨이 현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그에게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 이루어졌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개인들은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것에 익숙하다. 예컨대 200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신문과 방송들은 빈번히 이 시대를 자기 PR의 시대로 포장하면서 그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끊임없이 상품화하려는 욕망에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다시 정정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상품화하려는 개인들 즉, 자본주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인들이 늘어난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욕망이 신문과 방송 등의 매체의 내용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말이다. 불륜 드라마가 많아져서 불륜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불륜이 많아서 불륜 드라마가 많아졌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자기 자신마저도 상품화하려는 욕망이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 SNS)를 통해서 범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그런 인식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SNS를 통해서 친구들 혹은 친구의 친구들의 자기 상품화에 실시간으로 무방비 노출되게 되었고 나 자신도 그들 이상의 상품적 가치를 띄게 되기를 열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새로이 유행하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이라는 SNS는 그런 자기 상품화의 장의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우리는 범지구적인 범위에서의 불특정 다수들로부터 자신의 식스팩, S라인 등을 드러내는 자기 상품화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프란시스 윈(Francis Wheen)은 맑스가 자본가를 뱀파이어(Vampire)로 비유했고 그들의 잔치가 끝나도 뱀파이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그의 저서 자본론 이펙트에서 말하고 있다. 맑스의 예언은 너무나 옳았다. 이제 우리는 그 뱀파이어의 습격을 당한 좀비(Zombie)들의 방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임슨의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바흐친의 문화 논리에 다가서면 그의 이론은 전혀 다른 맥락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흐친의 이론에는 제임슨의 것에 비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점은 제임슨 말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아도르노(Theodor Adorno)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학파(The Frankfurt school)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결국 그에게 당면한 과제는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에게 실질적 위협으로 작용한 스탈린주의의 타도가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루카치의 비교에서 드러났듯이 보편성에서 대한 무의식적 애착이 그에게 중대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5. 확장된 의심

 

바흐친은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에서 구주조의 언어관(Structural linguistics)을 강하게 비판한다. , 언어는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말하는 자의성을 가지고 단순히 반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계급층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굴절된다는 것(Existence reflected in sign is not merely reflected but refracted, MTPL 23)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초기 맑스주의 관점 내에서 언어의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바흐친의 언어관은 주체성에 관해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의 언어관은 너무나 단순화되었다. 그는 주체와 언어 사이의 관계를 일대일 대응 관계로밖에 설명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통합된 주체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그 주체는 할 일이 없어지는 역설에 빠지고 만다. 이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맑스주의자가 고심하는 문제이다. 이에 지젝은 그의 저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 하나이다에서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의 문제제기를 단순히 말하자면 자신의 계급을 배신하는 즉, 지배계급에 투표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것이다. 알튀세의 논지에 따르면 그들은 이데올로기(대타자)에 호명된, 이른바 그들에게 개조된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젝은 알튀세의 그런 분석을 거부한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와 맑스의 생각을 거부한다. 그는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을 알면서도 그것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심리는 사회·역사적 맥락으로 풀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무의식, , 주이상스(Jouissance)라고 부른다. 이 주이상스는 금지라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법에 의하여 각기 다른 증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젝의 생각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재계(Real)와 상징계(symbolic) 사이를 부유하는 의심스런 주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주체 자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보는 지젝의 생각은 역사를 대화적인 것으로 보는 즉, 지향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는 바흐친에게는 당황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그런 생각을 통해서는 그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민중성도 의심스러운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맑스주의자가 결코 정신 분석학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도 이런 것이다. 남을 받아들이면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주체는 항상 사회·역사적 맥락 밖에 존재하는, 기존의 질서로서는 도저히 파악 알 수 없는 자들이었다. 서태지가 그러했고 노무현이 그러했다. 그들은 좌파와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 같은 기존의 틀을 깨는 자들이었다. 존재가 존재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항상 변함없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제의 자신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버리는 일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보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푸코는 매우 실천적인 이론가이다. 푸코(Michel Paul Foucault)는 지식이라는 담론(discourse)을 근본적으로 의심했다. 바흐친의 이론으로 예를 들자면 단성성/다성성 같은 담론적인 것과 비담론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이분법보다는 푸코는 어떻게 담론이 형성되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지식의 고고학 등을 통해서 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지식은 명제, 지식 체계, 이념(idea) 순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가 도달한 결론은 바흐친을 비롯한 맑스주의자가 말하는 당파성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일부 지식인 주도의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정말 중요한 몫은 대중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인은 대중들에게 방법론만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게 방법론은 담론 형성 자체에 대한 의심이었고 이것을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The Dialogics of Critique에서 가디너의 말처럼 바흐친은 푸코의 근대성에 대한 의심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실천성을 위한 주안점은 달랐다. 바흐친은 이 세계를 철저하게 계급투쟁의 장으로 인식했고 그곳에서 몫 없는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것의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이 이상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푸코는 그런 것보다는 그런 담론들의 분화(계급투쟁에 의한)의 과정 그 자체에 중요한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의 체계를 분석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용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적인 세계의 특성에 대해서는 이 두 이론가 사이의 일치점이 분명 존재한다. 바흐친이 소설에 있어 작가만의 담론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작가, 주인공, 인물들 사이의 다층적인 의미를 생성하는 것에 최고의 의미를 부여했듯이 푸코는 어느 특정한 지식인, 혹은 정치가의 주장에 이끌려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우리가 2008년 촛불 집회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듯이 푸코는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문화 운동으로부터 진정한 변화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by 그루브21 2014. 12. 24. 09:51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탈출하려는 욕망에 불타오르는 존재이다. 존재론적으로 그는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깝게 보면 현재 자신의 내적·외적인 발전을 꿈꾸게 되고 넓게 보면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의 지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보면 결국 그는 죽음이라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 역시도 어떠한 장애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적극적 면모를 보이는 주체이다. 그래서 그 인간이라는 주체에 의해 이 세계는 백년도 않되 죽어 썩을 인간의 육체처럼 허망하고 가식적인 물질의 세계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마치 신처럼 영원하고 무한한 정신의 세계 즉, 지상계와 천상계라는 이분법의 세계로 재편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이분법의 세계의 핵심은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가 서로 평등하게 놓이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의 쏠림 즉, 후자에 대한 전자의 복종이라는 특성에서 잘 나타나게 된다. 특히 서양에서의 플라톤(Plato)의 이데아(Idea)론은 이런 인간의 이분법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동굴에 의한 비유는 현상 세계를 천상 세계를 위한 전초 기지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철학 담론은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이라는 또 다른 이분법적 정의의 종교 담론으로 계승되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이전 시기보다 훨씬 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종교 담론은 철학 담론에 비해 더욱 실천적이고 강제적인 기능을 수반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종교 담론의 실천성과 강제성이 만드는 억압이 사람들의 또 다른 안식처가 되었다는 점도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안식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는 사람마다 달랐을 뿐이었다.

 

브라우닝(Browning)‘Fra Lippo Lippi’는 앞서 서술한, 수천 년 동안 쌓여온 거대 담론 혹은 이데올로기(Ideologie)에 반기를 드는 수사의 극적 독백(dramatic monologue) 형식의 시이다. 여기서 그 반기의 주체자의 직업이 수사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작품에서 설정된 시기가 중세 말기에서 르네상스 초기라는 점(시의 17연에서 Lippo 수사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Cosimo of the Medici(1389~1464)는 이탈리아(피렌체) 르네상스의 전성기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기 때문이다.)으로 미루어 보아 수사라는 직업은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체계를 수호하는 집단의 대표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결국 Browning은 진보와 보수라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결합시켜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반대자가 대항하는 그 이데올로기의 중심부에 있어야만 그것의 문제점, 그것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그 이데올로기의 반대편에서 그런 행위의 주체가 나왔다면 그것은 단지 자신의 계급을 대표하는 행동일 뿐인, 상대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부족한, 단지 한쪽에만 치우친 행위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Lippo 수사가 아기였을 때 부모가 죽고 거리에 버려졌다는 점(I was a baby when my mother died And father died and left me in the street, 1263)도 그의 반란의 핵심적인 근원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Moll Flanders처럼 상징계(Symbolic)적 질서로의 편입 도중의 붕괴는 일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상징계적 질서를 만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요컨대 진정한 의미의 주체는 밖으로 떨어져 존재하다가 다시 편입해 들어와 기존의 상징계적 질서와 맞서는 이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종교 담론과 같이 기존의 질서는 그 휘하에 있는 개체에 비하여 너무나 강력하고, 설사 대항할 수 있는 개체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질서에 맞서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사 Lippo는 지금까지 서술한, 기존의 질서와 맞서는 (혁명적) 주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매춘부와 쾌락을 즐기려다가 잡히고(And here you catch me at an alleys end Where sportive ladies leave their doors ajar?, 1261) 권력자의 이름을 빌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는(And please to know me likewise, Who am I? Why, one, sir, who is lodging with a friend.... Cosimo of the Medici, 1261) 이와 같은 Lippo 수사의 행동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혁명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이런 점은 우리의 인식 체계가 사회화된,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으로 반증한다. 대부분의 단어들이 그러하듯이 혁명, 반기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가령 가벼움에 대한 혁명은 무거움이고, 통합적이고 중심적인 것에 대한 반기는 해체이고 비종결성으로 언제나 상호 상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혹은 사회적 지향성에 따라 한 단어가 내포하는 기의(Signifié)는 변화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수사 Lippo의 행동은 기존의 종교인들의 행동이라는 또 다른 기의와 대립되는 것이다. (르네상스, 빅토리아조 혹은 현재까지도) 그렇지만 Lippo 수사처럼 일반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혁명으로 평가받을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일탈과 탈선은 새로운 규범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결국 그 일탈이 혁명으로 정당성을 획득하는 길은 시대적 사명이 요구하는 필연성과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당대에는 인정받을 수 없을지라도 후세(역사)에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 다시 조명 받는 정조, 광해군 같이 말이다. 문제는 그 시대적 사명은 각기 다른 담론들의 엇갈림 속에 숨어있어 제대로 인식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더욱이 동시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보다 직접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그리고 인식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예를 들어 성경에서 예수(Christ)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른다고 말한 거와 같이)마저도 순진한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이런 어려움의 또 다른 이유로 등장하였다. 과거의 이론가, 특히 초기 맑스주의자(Marxist)들은 하위 계급의 인식적 깨달음이 일어나면 이 세계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고수했지만 정신분석학의 개념이 들어오면서 이런 믿음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른바 알튀세가 말하는 '해방적 주체'는 불가능함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희망은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이것을 관심(interest)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작품에서 우리가 당면한 것은 Lippo 수사의 일탈이 혁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Lippo 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발화에 있어 표현의 특성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그의 저서 꿈의 해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발화의 분석을 통해 Lippo의 수다스럽고 감정적인 내용 속에 숨어있는 보다 진실한 형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고 하얀 쥐(a wee white mouse, 1261)', '궁둥이를 맞대고 자초지정을 얘기합시다.(Let's sit and set things straight now, hip to haunch, 1262)', '내 배가 당신 모자처럼 텅텅 비어 있을 때(My stomach being empty as your hat, 1263)', '그렇지만 나의 승리의 짚불은 타오르다가 연기로 사라졌다.(But there my triumph's straw-fire flared and funked, 1264)'등의 Lippo 수사의 표현은 비유적이고 그의 진정한 직업인 화가에 걸맞게, 언어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듯이 매우 시각적이다. 그러나 그의 시각적 묘사는 단지 그의 직업을 암시하는 장치가 아니다. 이런 Lippo의 발화의 시각적 이미지는 수도원장과 학자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예술관과 밀접히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그림에 있어 육체와 숨결, 생명의 불꽃과 영혼을 어우러지게 하여 왜 그것을 삼중으로 고양시킬 수 없는지를 외치고 있다. (Suppose I've made her eyes all right and blue, Can't I take breath and try to add life's flash, And then add soul and heighten them threefold?, 1265) 다시 말해서 그는 상관들이 숭배하는 지토(Giotto)의 예술관에, 즉 육체를 경시하고 영혼만 숭배하는, 가식적인 당대 예술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 반기가 그의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술관에 대한 비판을 넘어 당대 인간에 대한 비판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You tell too many lies and hurt yourself, 1266) 그는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해석자들의 왜곡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주장을 통해서 기존 해석자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I always see the garden and God there A-making man's wife, 1266) 또한 Lippo와 신 사이의 직접성은 육체와 영혼의 직접적인 연결을 주장하는 그의 예술관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는 신의 작품(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시각적 이미지가 수도원장의 질녀에게서 정점을 찍게 되는 점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이미지에 비해 그녀의 이미지는 유사하지만 또한 사뭇 다른 뉘앙스의 의미를 발산하고 있다. stornelli의 형식으로 금작화(broom)부터 시작된 다양한 꽃의 이미지의 은밀한 제시는 수도원장의 질녀에게서 만개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수호성인(patron-saint)이자 헤로디아스(Herodias)이고, 성 루시(Saint Lucy)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Lippo 수사에게 있어 가장 어여쁜 얼굴이자, 춤을 추고 남자들의 목을 자른 여자이고, 그의 체면을 세워주고 교회에도 이득이 생기게 해준 은밀한 욕정과 은인을 표상한다. (‘헤로디아스라는 표현은 물론 수도원장의 해석이긴 하지만 수사 Lippo는 이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겐 오랜 남성들의 성적 억압을 파괴하는 헤로디아스의 이미지는 Lippo의 추구와 아주 잘 부합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욕정이라는 인위적으로 매겨진 성욕의 부정적 버전(version)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릴 것이다.) 결국은 수도원장의 질녀는 Lippo 자신에게 스승이자 가장 이상적인 육체 즉, 사랑의 대상인 것이다. 수사로서 가장 금기시되는 이성에 대한 사랑은 예술가라는 또 다른 자아를 가진 Lippo에게는 반드시 열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의 어린 아이 시절의 거리 생활로 터득한 생생한 육체의 세계는 관능의 세계에서 그 가능성이 만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 예술가로서의 자아는 수사로서의 자아 즉,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관문을 열어젖힌 Lippo는 그의 예술관을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하였다. 역으로 수사로서, 이데올로기가 정해준 금기를 어긴 그는 그의 인생에 있어 두 번째 버려짐은 스스로 감당해야할 몫으로 남게 되었다. 아무튼 Lippo는 자신의 예술에만 집중하고 있고 우리도 그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정말로 Lippo의 예술관은 오랜 세월 동안의 경험과 시험을 통해 구체화되었고 정립되었다. 그는 예술이 하느님의 작품인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능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그러나 그는 예술이 단지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를 통해 이미 완벽한 자연을 그 이상이 되게끔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이 점이 예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은 자연을 창조하고 예술가는 그것 이상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내 하느님만이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도 창조주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 아래 Lippo의 마음속에서 하느님과의 새로운 합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불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만들어진 하느님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Lippo는 자신의 생각이 현실 세계에 바로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지만 귀디(Guidi) 같은 자신의 후계자를 통해 자신의 신념이 역사적 필연성과 만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I hope so-though I never live so long, I know what's sure to follow, 1267)

그러나 시의 마지막에서 먼동이 트려고 할 때 투덜거리며 서둘러 돌아가려는 Lippo 수사의 모습은 모순적인 하위 계급의 면모를 또한 잘 드러나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사실 그는 그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모순적인 면을 청자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Lippo 수사는 한편에서는 메디치 집안을 인심 좋은 권력가로 묘사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은 일찍이 버린 쓰레기를 아직도 마음속에 소중히 담고 있는 가련한 악마들로 묘사하고 있다. , 언제는 메디치 집안 덕분에 이제는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다른 대화에서는 자신과는 맞지 않는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자신을 동정을 바라는 듯이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구속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동시에 아직도 자신을 노려보는 오래된 회초리, 늙고 엄숙한 눈이 보인다는 자기고백은 Lippo 수사의 분열적 자아를 더욱 극명히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를 모순적·분열적 자아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자이다. 하지만 여기서 위의 예에서 말해주듯이 타자는 일반적으로 주로 메디치 집안이나 수도원의 높은 분들 같이 힘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타자는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결국 Lippo 수사는 메디치 집안의 코지모(Cosimo) 어른이나 수도원장이 아니라 수도원장의 질녀나 귀디를 대할 때에도 다른 자아로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자의 타자들은 Lippo를 수사의 옷을 입게 하고, 육체를 억압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만들게 하는 반면 후자의 타자들은 그를 진보적인, 시대에 반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만드는 예술성을 추구하는 화가로 만들게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끊임없이 Lippo의 내면에서 이런 차이의 대립이 일어나고 그것이 그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자아 안의 타자들의 대조는 이영도의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끊임없이 도플갱어(Doppelgänger)들로 분화하는 숲에서 자신의 또 다른 도플갱어를 죽이는 그, 결국 그는 자신의 대부분의 자아는 파괴되고 미미한 파편만이 남게 된다. 이 판타지 소설에서 매우 극적으로 묘사되는 이 차이, 대조는 시의 마지막, 동틀 무렵의 Lippo의 투덜거림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Lippo내의 한 도플갱어가 또 다른 도플갱어들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는 Lippo의 자아 전체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편 브라우닝의 시 'Fra Lippo Lippi'의 화자 Lippo라는 수사이자 화가는 실제로 브라우닝 자신이 아니냐하는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인간의 적나라한 심리를 극적으로 제시하는 그의 시대를 앞서가는 시풍과 정신적인 것에만 매달려 육체를 경시하는 당대 예술관에 일침을 가하는 Lippo 수사의 르네상스적 예술론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점에서 그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브라우닝이 당대 영국의 현실을 견디지 못해 이탈리아로 도피했다는 점은 Lippo 수사의 고민과 비슷한 점이 그에게도 있었다는 추정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Lippo가 브라우닝이냐 아니냐는 크게 의미가 없다. 그것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행위는 시가 내포하고 있는 핵심적 의미를 흐리고 그것과 관계없는 부차적 목적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의미가 분명 존재한다. 대다수 예술가들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펴나간다. 왜냐면 그것이 가장 자신의 진실성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작가의 모든 작품이 자서전적인 형태를 띤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 자신의 내면은 프리즘(prism)인 것이다.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해서 스펙트럼(spectrum)으로 분해되듯이 세상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 분해되어 작품으로 보이게 된다. 차이는 단지 그것이 빨강(굴절이 가장 덜 되는)이냐 보라(굴절이 가장 많이 되는)냐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 Lippo 수사는 브라우닝의 작품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빨강에 가까운 인물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이유는 그 논쟁의 결과에 따라 독자의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의 양상은 분명 달라지기 때문이다. , Lippo를 브라우닝으로 보느냐 혹은 그를 시대에 저항하는 예술가로 보느냐는 독자에게 해석에 대한 다른 동기 부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브라우닝 자신도 르네상스 시대의 실제 인물인 Lippo, Cosimo를 끄집어낸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이다. , Lippo, Cosimo가 보여주는 실제 역사와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이미지를 통해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의미를 더욱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작가는 단지 자신의 만족, 성취감을 위해서 작업을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는 타인, 시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서 미래를 만들려는 주체이다. 결국 작가임을 포기하지 않는 브라우닝도 오래 전의 인물들을 통해서 독자, 즉 빅토리아 시대 대중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워즈워스(Wordsworth)의 영원성으로 다시 회귀하려는 칼라일(Carlyle),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생각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브라우닝의 생각은 내용적인 차이를 제외하면은 다른 문학가, 사상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대중들을 우매하고 깨우쳐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지식인들이 그들의 지팡이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맑스(Marx)의 자본론도 그런 맥락에서 집필되었다. Lippo가 자신의 생각이 귀디 등의 후계자를 통해서 만개할 것이라고 믿은 것처럼 맑스도 언제가 자신의 생각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발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소수 지도자 중심의 사회 개혁 운동의 한계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경험하였다. 예를 들어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은 이런 한계를 극명히 보여준다. ‘민족개조론이후의 이광수의 일본으로의 귀결(혹은 변질)에서 드러나듯이 이런 운동은 지도자에 극단적으로 의지하게 된다는 문제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수 주도의 운동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위 문화의 모델(model)을 제시한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4.19, 광주항쟁, 6월 항쟁에서 보여주는 우리의 사회 개혁의 운동이 촛불 시위라는 새로운 모델로 전위된 후 그것을 이어가지 못하고 정체된 우리 사회에게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by 그루브21 2014. 12. 11. 19:17

4. Bakhtin, Marxism and Russian Populism (요약)

바흐친을 맑스주의자로 보거나 혹은 그의 작품을 근본적으로 반 맑시즘적으로 보는 여러 경쟁적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유수의 석학들은 그의 작품을 맑시즘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바흐친을 종교적·신학적 사상가로 보려는 러시아 해석자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바흐친의 방법론은 루카치, 벤야민, 그람시 같은 맑시즘 이론가들과 의미 있는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동시대 맑스주의자와 분리되는 독특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계급 분화도 인정하지 않는 범주로서 사람들의 활력을 기초로 하는, 지배적 헤게모니의 약화를 목표로 하는 대중문화를 수호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방법론은 맑스와 엥겔스의 영향에 형성된 러시아 포퓰리즘의 전통으로부터 생겨났다. 따라서 바흐친의 작품은 정통적 맑시즘은 아니지만 맑시즘의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맑시즘 이론에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바흐친은 러시아 포퓰리즘의 전통에서 독일 관념론을 이해했다. 물론 그가 포퓰리즘에 정통했다는 문서적 증거는 거의 없지만 단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바흐친은 맑스주의의 선택적인 결합이었던 러시아 사회학의 오랜 전통으로 돌아갔다.

 

맑시즘과 포퓰리즘

러시아 포퓰림즘의 가장 유명한 맑시즘의 정의는 1897년 레닌에 의해 나로드니키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어졌다. 그것의 개요를 말한다면 첫째,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는 퇴락을 말한다. 둘째, 농민협동조합 같은 러시아 경제 체계의 예외적인 특징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셋째, 지식인과 정치적 조직 사이의 연결과 다른 이에 대한 사회 계급의 물질적 이익에 대한 묵살을 말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러시아 포퓰리즘이 자본주의를 반대하면서 사회주의의 꿈을 가지고 농업적 개혁을 지닌 민주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포퓰리스트들은 러시아 내의 자본주의의 발달뿐만 아니라 서구에서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발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그들의 서구 자본주의의 이미지의 형성의 주된 요인은 맑시즘이었고 특히 1867년에 출간된 자본론이었다. 다시 말해서 맑스의 자본론 덕분에 러시아 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첫 번째 적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완벽한 포퓰리스트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의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포퓰리스트의 의견을 맑스가 참조함으로서 그들의 교류는 대화적 만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후에 포퓰리스트와 러시아 맑시즘 사이의 갈등에서 나타난 기계적인 접근은 스탈린 시대에 크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맑스의 사상을 제대로 계승한 자들은 러시아 맑시즘이 아니라 포퓰리스트였다.

포퓰리스트에게 소작농의 공동체는 맑스가 부르는 원시 공산주의의 유물을 대변한다. 이것은 파괴적인 자본의 개입을 막고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퓰리스트는 주장한다. 1870년대에 맑스와 엥겔스의 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인간 욕구와 원시사회의 민주성에 대한 집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입장은 러시아 혁명가 베라 자술리히와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그 편지에서 맑스는 러시아 포퓰리즘의 기본 입장을 확인시켜주었다. 사회주의에 긍정적인 러시아의 역사적 조건을 확인해준 것이다. 이런 언급은 1924년까지 어디에도 출판되지 않았고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지만 트로츠키의 이론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 논거한대로 맑시즘은 러시아 포퓰리즘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위한 주요 틀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동시에 러시아 포퓰리즘은 맑시즘의 역사의 중요한 장으로서 인지되어야 한다.

 

주관적 사회학

1934년경에 소설가는 대중적 개념의 체계자로서, 레닌에 의해 묘사된 포퓰리즘의 세 번째 특징을 순응하는 위치로서 드러난다. 레닌은 라브로프와 미카일로브스키에 의해 발전된 포퓰리스트의 주관적 사회학을 언급했다. 이것은 기계론적 유물론자들이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부여하기위해 헤겔로부터 차용한 역사적 필연성의 법칙과 대치되어 발전했다. 일찍이 1856년에 라브로프는 헤겔적 범주를 물질세계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러시아의 경향을 규탄했다.

논리적 필연과 구별되는 주관적 사회학은 사회 변화의 윤리적 차원을 강조한다. 그것은 세 가지 주장을 지니고 있다. 첫째, 도덕적 가치는 사실로부터 제거되거나 끌어낼 수 없다. 둘째, 사회 과학은 객관화될 수 없지만 언제나 정서적, 이데올로기적 요인을 수반한다. 셋째, 인간의 생각과 의지는 발전의 법칙에 대항하고 결정적으로 역사적 과정을 형성한다.

주관적 사회학이 생철학과 신칸트 윤리학의 측면에서 서술되어져도 바흐친의 초기 저작에서는 발전의 논리의 수동적인 수용에 대항하는 포퓰리스트의 도덕적 주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맑시즘에 대한 유일한 직접적인 논평으로서 바흐친은 역사적 유물론의 힘과 매력은 결정적이고, 구체적으로 역사적이고, 실질적 행위를 위한 장소에 놓이지만 주어진 것과 계획된 것 사이의 구별을 실패해 방법론적 죄악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또한 각각의 사건은 역사로서 고려될 수 있는데 이것은 현상이 명확한 사회적 이상에 따라 선택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라브로프가 제시한 것처럼, 목적의식이 있는 의식적 활동은 인간의 여러 활동을 분류할 수 있는 중심적 실타래를 제공한다. 즉 역사의 창조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은 그의 특정한 이해를 보다 넓은 사회적 이해와 융합해야만 한다.

라브로프의 이론은 포퓰리즘 중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서구화된 진영에 속한다. 그리고 그의 후기 저작에서 더욱 사회학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관습의 무의식적 연대에서 해방된 개인의 의식적 연대로의 사회적 발전의 경제적 측면을 설명하려 했다. 그리고 개인의 출현과 연결된 역사적 세계의 탄생에 대한 그의 설명은 바흐친의 후기 관점과 매우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흐친과 같이 라브로프도 윤리 철학에 대한 신칸트 학파의 주장을 유지하면서 헤겔적 역사주의를 취했다.

미카일로브스키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의 당위성을 회고적 이상주의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원시 사회는 사회적 분화, 특수화, 종속 없이 단순한 협동으로 특징지어진다. 반면 발달된 사회의 핵심은 노동의 분할이다. 이 분할은 인간성과 세계관의 분열을 가져온다. 그러나 역사가 인간을 파편화시켰지만 인간은 아직도 하나의 전체이고 생각은 분해될 수 없는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 안에서 그는 원시 사회의 공동체 의식에 이 시대에 필요한 진보적 역할을 부여하려 했다.

바로 이 생각이 바흐친의 문화에 대한, 특히 그의 카니발 이론의 중심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미카일로브스키의 주장이 광범위하게 자본론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먼저 주목해야한다. 또한 자본론은 지멜의 신칸트학파에 대한 해석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는 자본론을 통해서 대중들이 어떻게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노동 시장으로 던져지는 지를 발견했다. 공동 소유의 잔재들은 자본주의의 마수로부터 보존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바흐친과 포퓰리스트

바흐친에게 신칸트 철학의 영향을 받게 한 인물은 그의 친구 카간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라브로프와 미카일로브스키를 통해서 신칸트 윤리학과 러시아 포퓰리즘 사이의 유사성을 이끌어 내는데 일조했다. 바흐친이 그의 저작 활동을 하기 전부터 이 두 지적 흐름의 융합을 위한 전제들은 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포퓰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신칸트학파는 헤겔의 변증법적 일원론을 칸트의 자유의 윤리학으로 대치하였다. 하지만 정치적 암시는 사뭇 달랐다. 독일에서와 달리 러시아에서의 신칸트 윤리학은 포퓰리스트와 소작농들의 동맹을 통해서 파멸적 자본주의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1961년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에서 바흐친도 명백히 포퓰리스트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에 의해 극단에 다다른 인간성을 말하고 있다.

그런 조짐은 1929년부터 나타났었다. 그때 그는 주관적 사회학의 방법론을 명백히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제시하고 있다. 위대한 소설가는 통합되지 않은 다수의 의식을 제시하면서 나타난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칭점으로 톨스토이와 헤겔을 발견했다. 바흐친은 개인을 전체의 조각으로서 식별하는 시도에 대항하여 진실하고, 완전히 정당한 'I'를 옹호했다.

바흐친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의 발전의 사회학적인 전제 조건을 논할 때, 그는 그 조건이 러시아의 상황 아주 잘 맞는 것을 주목하였다. 서구에 비해 자본주의의 점진적 침식을 겪지 않은 러시아는 개인성과 사회성이 훼손되지 않았고 결국 다성적 소설을 위한 객관적 전제 조건들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역사의 해석과 다성적 소설의 의미는 포퓰리즘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의 진실한 개인성은 자본주의의 비극적 논리에 저항하는 원천인 것이다.

바흐친이 독백, 작가적 담론, 시학을 일컫는 것은 미카일로브스키에 의해 설명된 사회의 발전에서의 개인의 동질화의 과정과 유사하다. 그에게 소쉬르의 랑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문학 경전은 개인을 사회적 파편으로 만드는, 개인적 발화를 추상적 사회 언어로 돌리는 구심적 힘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정적인 문화의 형태는, 개인들에게 의문을 품을 수 없는 권위를 행사하는 카시러가 말하는 신화적인 것이다. 바흐친도 이런 카시러의 입장을 취하고 포퓰리스트의 논리에 따라 그것을 해석하였다. 사람은 자연에 다시 흡수되지 않지만, 사회 유기체에는 흡수될 수 있다. 개인적 언어는 사회적 언어로 합병되어진다. 랑그의 빠롤처럼 말이다.

권위적 힘을 분산시키는 내적·설득적 담론은 라브로프의 해방된 개인의 의식적 연대의 언어적 필연적 결과이다. 즉 비판적으로 선택된 담론은 독립적·이데올로기적 삶을 격려하는 자신과 뒤섞여 있다. 바흐친도 라브로프와 같이 그런 사회성의 다양화를 지지하였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계층화된 언어, 이종어는 드러나게 되었고, 세계는 주관적 사회학에 따르는 사회를 구성하는 상호적인 원칙의 진정한 사회 이상과 만나게 되었다. 바흐친이 대화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주관적 사회학의 새로운 형태인 것이다.

 

카니발과 사회적 유기체의 부정

전통적 포퓰리스트의 정의는 바흐친의 이론인 카니발의 기능과 일치한다. 카니발에서 사회적 역할의 고정성은 사라진다. 잠시 동안 사회의 모든 구조는 전복되고 뒤집어 진다. 다시 원시 사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카니발의 군중은 미카일로브스키의 단순한 협조라는 그의 이론과 닮았다. 개인들은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초월하고 사회적 집단은 육체적으로 균질해지는 것이다. 만찬, 연회, 죽음 그리고 탄생은 미카일로브스키가 윤곽을 그린 회고적 유토피아의 상징적 구조와 일맥상통한다. 카니발의 한정적 시간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 공동체의 섬들은 현대 사회 질서의 상정에 대한 깊은 비판적 토대를 제공한다.

라브로프는 단순한 협조를 토대로 사회·문화적 영역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 정치적 당을 만들기를 원했다. 반면 바흐친은 그런 비평적 가능성의 생성은 종속된 개인을 체계화하고 설명하는 소설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에 의해 개인들은 진정한 특성과 다의성을 다시 얻게 된다. 포퓰리스트의 정치적 지도자가 대중을 강한 정치적 힘으로 구성하는 것처럼 소설가는 대중적 회의론을 비평적 문화 광장으로 구성하는 구조로 조각한다.

카니발 이론이 니체의 디오니소스부터 신칸트학파, 생철학까지 다양한 원천을 가지고 있지만 포퓰리즘과의 결속이 가장 분명히 존재한다. 바흐친의 포퓰리즘의 수용과 독일 관념론의 이해는 그가 고대와 농촌 사회주의 사이에서 끌어온 시도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바흐친은 이상적·고전적 예술 형태를 혁명적 문화로 기획하려는 민주적 지식인과 유사성을 띈다. 예를 들면 와그너의 보수적·심미적 예술 작품을 맑스와 엥겔스의 원시 사회의 이론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와그너에 의해 새로워진 고대 세계의 이미지는 맑스에 의해 취해지고 다시 러시아 이론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외적인 것이 공공적 특징을 획득한다는 그의 설명에 의해 고대 그리스 광장은 모든 것이 외면화된 곳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바흐친 문학론의 주인공, 라블레, 괴테,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에서 새롭고 완전히 외면화된 인물을 창조하려는 이들이 되었다. 마침내 소설에서 세상의 분열은 극복되어졌다. 그러나 예술과 삶의 분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결론

바흐친의 저작은 러시아의 환경과 전통에 의해 형성된 절충주의의 산물이다. 러시아 지식인으로서 그는 독일로부터 철학적 사유를 배웠고 그것들을 당대 사회 문화적 쟁점들에 조화시켰다. 그런 신칸트학파와 생철학의 영향을 받은 바흐친의 초기 저작은 19세기 중반 윤리 철학적인 러시아 포퓰리즘을 연상케 한다. 반면 그의 후기 저작은 포퓰리스트의 사회 정치적 경향과 유사함을 띈다. 바흐친을 정치에는 무관심한 철학적 포퓰리스트로 보는 해설가는 1870년대의 러시아 포퓰리스트이 자신들을 비정치적이라고 칭하는 것을 잘못 인지한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형태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중요한 것은 정치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바흐친은 주관적 사회학과 관념 철학의 범주에 너무 긴밀히 연결되어졌다. 그러나 산만한 상호작용 속에서 현상학적 측면에 집중함으로서 그는 더욱더 헤게모니의 의미론적 측면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 분석을 문학의 장르와 역사에 적용시킴으로서 어떠한 사회·정치적 반대보다 문학 분석의 방법론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가 언어의 집중화 같은 윤리적 문제로 처리한 많은 현상들은 사실 정치적 문제 제기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어적 계층화는 단지 의식의 다변화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결정소를 가지는 것이다. 한편 몇몇 경우에서의 바흐친의 분석은 맑시즘의 원칙에 따라 수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맑시즘과 바흐친 철학의 상호작용의 과정은 역사적 유물론과 그것이 창조한 포퓰리즘 사이의 경우처럼 대화적이어야 한다.

 

by 그루브21 2014. 12. 8. 17:42

15. Aesthetic Visualizing of Time/Space: The Chronotope (요약)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서사시는 절대적인 과거를 묘사하는 세계의 이동을 특징으로 갖는 완성되고 종결된 포괄적인 형식이다. 서사적 세계의 관점에서 시작’, ‘처음’, ‘창립자’, ‘조상’, ‘일찍이 일어난 것등은 단지 시간의 범주가 아니라 극한 단계까지 안정된 시간의 범주이다. 진정한 선함은 과거에만 일어난다. 서사시의 절대적 과거는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한 유일한 원천이고 모든 선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서사적 과거는 상대성, 즉 점진적인 현재와 연결될 수 있는 시간적 과정이 부족하다. 다시 말해서 경계선에 의해 모든 차후의 시간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계선을 파괴하는 것은 장르로서의 서사시의 형태를 파괴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공간에는 우리가 미래를 엿볼 구멍을 찾을 엄두를 내기조차 힘든 확정성과 닫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특성의 서사시의 과거는 국가적 전통의 형식에서만 보존되고 나타나진다. 서사시는 전적으로 전통에 의존한다. 서사시의 담론은 전통에 의해 물려받은 담론인 것이다. 그 때문에 절대적 과거의 서사시의 세계는 개인적 경험으로 접근할 수 없고, 개인적 관점 혹은 평가를 허락되지 않는 전통적이고 성스러운 것이 되었다.

이런 관여될 수 없는 장르에서의 개인은 완결된 존재이다. 그러나 완벽하다는 것은 가망 없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그 자신과 일치를 이루고 완벽히 자신을 표면화시킨다. 그의 진정한 본질과 그의 외적 징후 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서사적 거리감의 파괴와 관여될 수 없는 면에서 현재의 비결정적인 사건의 구역으로의 개인 이미지의 이동이 이루어진다면 소설과 모든 문학에서 개인 이미지의 근본적인 재구성이 이루어질 것이다. 민속 문화와 소설에 대한 대중-희극적 원천은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웃음은 서사시의 거리감을 파괴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자유롭고 친숙하게 조사하였고 또 그를 뒤집었고, 표면과 중심 사이, 가능성과 실제 사이의 차이를 노출시켰다. 인물은 더 이상 그 자신과 일치시키는 것을 그만두었고 또한 구성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우리는 문학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의 관계의 본질적인 결합을 크로노토프(chronotope)라고 부를 것이다. 이 용어는 원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때문에 소개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의 용어를 은유적으로 차용할 뿐이지 큰 연관은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용어가 공간과 시간의 불가분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로노토프에서 공간적, 시간적 지표는 하나의 구체적인 전체로 융합된다. 시간은 짙어지고, 예술적인 시각을 획득한다. 그리고 공간은 시간, 구성, 역사에 반응하게 된다. 이런 상호 교차가 크로노토프를 특징짓는다.

문학에서 크로노토프는 본질적인 포괄적 중요성을 갖는다. 장르와 포괄적 구별을 결정짓는 것은 크로노토프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형식적 구성 범주인 크로노토프는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미지도 결정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시간과 공간을 예술적으로 고정시키는 방법들을 가진 세 가지 소설적 유형이 발달되었다. 다시 말해서 세 가지 소설적 크로노토프가 있었다. 이것들은 매우 생산적이고 유연했고 18세기 중반까지 모험 소설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

 

i) 그리스 로맨스 : 시련의 모험 소설

갑자기바로 그 순간에라는 말은 이 시대의 유형을 특징짓는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고유의 특정한 논리를 가지는 순전한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무작위의 만일의 사태이다. 즉 시간에서 무작위적 괴리의 논리이다.

시간의 이런 유형에서는 개인은 단지 완전히 수동적이고 변하지 않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주성을 빼앗긴 개인인 것이다. 그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공간적인 종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리스 로맨스에서의 모든 인물의 행동은 공간(탈출, 박해, 탐색)을 통한 강요된 움직임에 환원되었다. 결국 인간의 공간을 통한 움직임은 그리스 로맨스의 크로노토프에 대한 기본적 색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맨스에서의 인물은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운명이 정해준 것을 견딘다. 인간 정체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적 암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 로맨스는 계급의식을 선행하는 민속 문화와 긴밀한 연결 관계를 가진다. 그리스 로맨스에서 아무리 인간의 정체성이 빈곤하게 될지라도 그것 안에는 민속적 인류의 귀중한 알맹이가 보존되고 있다. 그들은 자연과 비인간적인 힘 사이의 투쟁에서 파괴될 수 없는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을 언제나 느끼고 있다.

 

ii) 일상생활의 모험 소설

인간의 민속적 이미지는 변형과 정체성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결합은 대중 민간설화에서 매우 명료하게 보인다.

변형은 위기의 매우 중요한 순간에서 개인의 삶의 전부를 묘사하는 방법을 위한 토대로서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삶의 과정에서의 다양한 시대와 단계로서 그 안에 통합되는 이미지를 제공받는다. 우리가 얻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위기와 재탄생이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그리스 로맨스의 플롯과 아풀레이안(Apuleian) 플롯이 구별되는 것이다. 아풀레이우스가 묘사하는 사건은 주인공의 삶을 결정한다. 물론 전체로서의 전기적 삶이 아니라 몇몇 위기의 순간 묘사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의 삶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자주성은 주인공 그 자신과 그 고유의 인간성에 속하게 된다. 주인공이 겪는 연속적인 모험은 그의 정체성의 단순한 확인을 야기하지 않고 정화되고 재탄생된 주인공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개인의 삶의 과정을 그의 실제적 공간의 과정, 길과 융합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길 그 자체는 친숙한 지역을 통해 확장되었고 마침내 장르의 역사성 안에서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는 독특한 소설적 크로노토프가 생성되었다. 그것의 중심은 민속 문화이다. 민속에서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삶의 길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 되었다.

 

iii) 고대 전기문학과 자서전

자서전, 전기문학의 고전적인 형식은 문학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행동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반대로 그런 형식은 시민적, 정치적 행동 혹은 공공성을 부여하는 인간성에 대한 칭찬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적인 크로노토프라기 보다는 외적인 크로노토프이다. 이 진정한 삶의 크로노토프에서 삶과 인간 이미지의 한계는 그것의 특수함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 진정한 삶의 크로노토프는 공공 광장(the agora)에 의해 구성된다. 고대에서는 개인과 그의 삶의 자서전적, 전기문학적 자의식은 공공 광장에서 발가벗겨지고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광장은 어떤 상태를 구성하게 된다. 그것은 최고의 법정, 과학과 예술의 전체, 그것에 참여하는 전체 사람을 말한다. 그 안에서 가장 고상한 범주들이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보이게 되고, 공적인 시민의 승인의 도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시대에서 사람의 이미지는 안 들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왜곡되었다. 이제 그의 공공적 기원을 생산할 수 있는 통합과 총체를 잃게 되어 그의 자의식은 통합된 크로노토프를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진실성을 잃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게 되었다.

크로노토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소설의 기본적인 서술에 대한 중심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크로노토프는 서술의 매듭이 묶이고 풀리는 장소인 것이다. 이제 크로노토프에 의해서 시간은 감지할 수 있고 보이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크로노토프는 소설에 형체를 부여하는 힘으로서 구체화하는 묘사를 위한 중심으로서 나타난다. 모든 소설의 추상적 요인, 즉 철학적 사회적 일반화, 생각,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은 크로노토프에 끌리게 되고 예술의 상상하는 힘을 작동하게 만든다. 이것이 크로노토프의 묘사적 의의인 것이다.

 

16. The Serio-Comical Tradition of The Menippea (요약)

 

고대의 요소는 끊임없는 재생, 즉 현대화 덕분에 보존된다. 장르 안에서 언제나 낡고, 새로운 것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장르는 문학의 전개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갱신하게 된다. 장르는 현재를 살지만 언제나 그의 과거, 시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르는 문학의 전개의 통합과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소설적 장르는 세 가지 근본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서사시, 수사학, 카니발성이다. 특히 카니발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지한척하는 희극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영역은 두 가지 장르로 나누어진다. 소크라테스(Socratic)식 대화법과 메니피안(Menippean) 풍자이다.

메니피안 풍자는 고대 기독교 문학과 비잔틴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것은 발전을 계속 지속해왔다. 그래서 메니피안 풍자는 문학에서 카니발 감각을 위한 주요한 경로가 되었다.

메니피아는 자유스런 플롯과 철학적 독창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것의 주인공이 역사적·전설적 인물이라는 것은 어떤 방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우리는 메니피아보다 더 자유스러운 장르를 발견할 수 없다.

장르로서 메니피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환상과 모험의 대담한 사용이 내적으로 동기화되었고, 정당화되고,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목표에 헌신되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환상은 진리의 긍정적인 전형을 위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유발하고, 무엇보다도 시험하는 방식으로서 작용한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은 놀라운 삶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때때로 환상은 모험 이야기의 특징을 채용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환상은 진리를 야기하고 시험하는 관념적 기능에 종속된다. 한 사람을 시험하는 것은 세계에서 그의 철학적 위치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니파아의 내용은 세계 내의 진리의 모험에 관한 것이다.

또 메니피아는 환상과 상징, 신비스런 종교적 요소를 극단적인 사실주의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 진리의 모험은 길, 사창가, 도둑 소굴, 여관, 시장, 감옥, 에로틱한 잔치 등의 장소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이미지는 극한 표현으로 세속적인 악마, 타락, 천함, 상스러움과 충돌하게 된다. 이런 메니피아의 대화성은 도스토예프스키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은 메니피아에서 독창성과 환상적인 요소의 대담성은 철학적 보편성과 가능한 넓은 범위로 세상을 보는 수용성과 결합되었다. 그리고 메니피아는 극단적인 질문의 장르이다. 그것에서 철학적 위치는 시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세, 종교 개혁의 시대를 통해 메니피아는 아래 세상에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르네상스의 유럽 문학에 널리 퍼진 죽은 이의 대화(dialogues of the dead)라는 특별한 장르가 생기는데 영향을 끼쳤다.

메니피아에서 실험적인 괴기함은 그것의 외형을 고대 서사시와 비극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괴기함은 삶의 관찰된 현상의 척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라블레, 스위프트, 볼테르 등에 의해서 메니피아의 이런 특성이 계승되게 되었다.

메니피아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비정상적인 도덕적, 정신적 상태의 묘사가 나타내게 되었다. 이 현상은 단지 주제로서 좁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 백일몽, 정신 이상은 개인과 그의 운명의 서사시와 비극의 요소를 파괴한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서 다른 누군가와 다른 삶의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의 종결된 자질을 버리는 것이다. 꿈은 서사시에도 흔하지만 그곳에서는 예언적이고 충고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것이다. 결국 총체와 종결된 자질의 파괴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적 관계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그리고 스캔들과 괴상함(scandals and eccentricities), 그리고 부적절한 말도 메니피아의 이런 특성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메니피아는 날카로운 대조와 모순적 결합으로 가득 차있다. 예를 들어 고결한 창녀, 노예가 되는 황제, 도덕적 몰락과 정화 같은 갑작스런 이행을 메니피아는 좋아한다.

그리고 메니피아는 자주 꿈 혹은 여행의 형태로 구현되는 사회적 유토피아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때때로 유토피아적 소설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 유토피아적 요소는 다른 모든 장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장르가 중간에 끼워지는 것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도 메니피아의 특징이다. 끼워지는 장르는 중편 소설, 편지, 웅변적 연설, 심포지엄 등을 말한다. 이 끼워짐의 과정에서 패러디와 객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끼워지는 장르의 존재에 의해서 메니피아의 다채로움은 또다시 강화된다. 여기서 합쳐지는 것은 말에 대한 새로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메니피아의 마지막 특징은 당면한 논쟁적인 핵심에 대한 관심이다. 그래서 이것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핵심을 날카롭게 울리는 고대의 기자적인 장르인 것이다. 예를 들어 루시안의 풍자들(The satires of Lucian)은 공공연하고 숨겨진 철학적, 종교적, 이데올로기 등의 논쟁들과 당시대 혹은 최근에 사망한 공적 인물들의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그것들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새로이 나타나는 사회 내의 유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특징을 갖는 메니피아는 고결이라는 고대 이념을 구성하는 시대적 규범이 파괴되고, 수많은 이질적인 종교와 철학 내에서의 투쟁이 강렬해진 시대에서 형성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종교의 준비와 형성 과정의 시대에서 형성되었다. 바로 기독교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다른 면은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부합되어 역할을 수행하는 인간 삶의 외적인 위치를 평가 절하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스토아학파 철학자와 루시안(Lucian), 아푸레이우스(Apuleius)의 문학 작품의 영향이 컸다. 이것으로 인하여 인간과 그의 운명의 서사시와 비극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메니피아라는 장르는 그 시대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되었다. 그곳에서 삶의 내용은 내적 논리를 가지는 안정된 형식에 부어졌고, 더불어 그것의 모든 요소의 연결이 보장되어졌다. 이 때문에 메니피아는 유럽 소설의 역사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by 그루브21 2014. 12. 8. 13:21

Section Two : The Heteroglot Novel (요약)

7. 도스토예프스키의 다의적 소설 : 의식의 다양성

도스토예프스키는 다의적 소설의 창시자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소설 장르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서 영웅은 보통 소설에서와 같이 작가의 목소리와 같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인물의 말과 세계(A character's word about himself and his world)도 작가의 것만큼 중요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작가의 특성 중 하나로서 객관적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고 또한 작가를 위한 대변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의 구조에서 놀라운 독립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의 플롯의 층에서 인물들을 작가의 계획에서 고정된 요소로 되게 하는 혹은 완결된 이미지로 결합시키는 간섭적인 연결(ordinary pragmatic link)이 부족하다. 그의 소설에서 그런 연결은 부차적인 역할과 특이하고 드문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서술의 지향은 단성적인(monologic) 소설과 매우 다르다. 말해지는 이야기, 만들어진 묘사, 제공 되어진 정보로부터의 위치는 새로운 세계, 즉 객체가 아닌 자주적인 주체의 세계에 맞는 새로운 방법으로 지향되어져야 한다. 그는 그런 지향을 통해 다성적 세계를 구성하고 단성적인 유럽 소설의 확립된 형태를 파괴했다.

그 지향에 대한 가장 믿음직한 토양은 러시아에서 이루어졌다.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는 거의 비극적으로 시작되었고 점진적인 자본주의의 침해를 받지 않아 다양한 세계와 사회적 집단이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러시아에서 발전하는 사회적 삶의 모순적 특성은 단성적인 의식의 뼈대에 맞지 않고 이 세계의 개인적 인격은 아주 생생함을 띄게 되었다. 이런 객관적 전제 조건들은 다의적인 소설의 다층성과 다성성의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자신의 시대의 모순적인 다층성에 참여하였다. 이 경험은 그에게 하나의 의식안의 생각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공존하는 넓고 발달된 모순들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창조적 시야의 중요한 특징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의 방식의 근본적인 범주는 전진이 아니라 공존과 상호작용이다. 그는 그의 세계를 주로 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서 보고 상상한다. 모든 것을 공존하는 것으로 보고, 나란하고 동시적으로 인식하고 보여주려는 그의 완고한 욕구는 한 인물을 그의 다양한 자신과 대화를 시킴으로서 한 사람의 내적 모순과 내적 단계를 공간적으로 극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동일한 시간, 장소를 가능한 많은 사람, 주제로 집중시키려는 그의 욕구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런 욕구는 또한 동적이고 빠름으로 이끌어진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승리뿐만 아니라 시간에 대한 승리를 성취하였다.

물론 지금 제시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특징은 말의 일반적인 감각에서 그의 세계관의 특성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그의 예술적 인식의 특성이다. 그는 작품에서 공존이라는 범주만으로 세계를 보고 대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특성은 그의 추상적 세계관에서도 필수적으로 반영된다. 그는 끊임없이 환경적 인과관계에 대한 이론에 대항하여 반론을 제기하고 모든 사회·정치적 문제를 현재의 평행선상에서 다룬다. 그의 이런 점은 기자로서의 위치에 아주 적합하였다. 결국 그의 하루 동안의 동시대 사회의 모순점들의 교차인 신문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의 예술적 시야의 특징에 의해 정확히 설명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것을 공존과 상호작용으로 보는 놀라운 예술적 능력은 위대함과 동시에 취약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에게 많은 본질적인 것을 놓치게 만든다. 많은 현실의 면들이 그의 예술적 시야의 장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능력이 극한 단계까지 발전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일반인들의 인식 체계까지도 갖출 수 있게 하였다. 다른 이들이 한 가지 생각을 보는 곳에서 그는 두 가지의 생각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분기이다. 단순한 거 같았던 모든 것은 그의 세계에서 복잡해지고 이중적 구조가 되었다. 그는 모든 현상에서 심오한 모호함을 인식하게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순, 분기는 변증법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발전하는 연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평면에 펼쳐진 어떤 것을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시각화하는 힘은 그 순간의 장소에서의 다양성을 그 자체로 나타내는 것에 고정된다.

단테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모든 목소리를 즉각적이고, 동시에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특별한 능력은 그에게 다의적인 소설을 창조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모순적이고 복잡한 시대 상황, 몰락한 지식인, 사회 방랑자로서의 그의 위치, 삶의 다층성에 대한 그의 참여도 다성적인 소설의 토양이 되어 주었다.

모든 안정적이고 객관적인 영웅의 자질은 도스토예프스키에 이르러 자의식의 주제가 되었다. 그래서 인물의 자의식이 그의 현실의 한 요소로서, 그의 통합된 이미지의 단지 특징 중 하나로서 보일 때 현실의 모든 것은 자의식의 요소가 된다. 하지만 작가는 자기 자신, 즉 그의 배타적인 시야의 장을 유지하려한다. 작가는 그것을 영웅의 시야의 장으로 집어넣으려 한다. 반면 도스토예스프는 작가의 단단하고 완결시키는 정의를 영웅 그 자신의 자의식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서 작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완수한다. 영웅 자신의 현실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외적 세계와 모든 삶을 자기 인식의 과정으로 끌고 오게 되었다. 이제 모든 세계와 흡수된 영웅의 자의식에 따라 다른 의식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영웅의 이미지의 구성에서 예술적 우월로서의 자의식은 그것 자체로 예술적 세계의 단성적인 결합을 무너뜨리기 충분하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서만이 영웅의 자의식의 강세는 객관화되고 작품 그 자체가 영웅과 작가 사이의 간격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영웅과 작가 사이의 긴밀한 선을 자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개인적 기록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완전히 객관적이고 작품 속의 영웅은 비교적 자유롭고 독립적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다성적인 소설에서 작가의 새로운 예술적 입장은 대화적인 것이다. 이 대화적인 입장은 영웅의 독립성, 내적 자유, 비종결성, 불확정성을 확정해준다. 대화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즉 창조 과정에서의 실제 현재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한 대화는 문지방에서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은 열린 삶으로서 조직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 인물에 대한 작가의 담론은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즉 작가의 말을 듣고 대답할 수 있는 누군가에 대한 담론으로서 구성된다. 그런 구성은 전통적인 장치는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작가의 입장인 것이다. 인물은 작가의 말에 대한 소리 없는 대상이 아니다. 즉 대화적으로 그에게 말해진다. 바로 그 구성에 의하여 작가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인물과 대화한다. 오직 대화적 참여적 방향만이 담론으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다른 이의 담론을 진지하게 취할 수 있고 다른 관점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런 강렬한 의미론적 연결에서의 거리를 보존하는 것은 작가의 계획에 필수적이다. 이것은 인물의 표현에서 진정한 객관성을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물의 독립성으로 말미암아 인물이 작품의 요소로서 존재하고, 전적으로 작가로부터 창조됐다는 사실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인물의 독립성은 작가의 계획의 한계 내에서만 존재하고 객관화된 영웅의 비자율성과 같이 창조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창조라는 것은 발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물질의 법칙만큼 그 자신의 특별한 법칙에 얽매여 있다.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그 대상과 대상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자유재량도 허락되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대상 그 자체가 내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적 이미지도 그것이 나름의 예술적 논리와 생성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명될 수 없다. 작가는 그 자신을 이 체계에 종속시켜야만 한다.

 

단성적인 소설과의 비교를 통해 지금까지 다룬 다성적인 소설에서의 작가의 새로운 입장을 더욱 명확히 하고자 한다. 그 대상은 톨스토이의 세 죽음(Three Deaths [1858])이다. 이 작품은 부유한 귀족 부인, 마부, 나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총체적으로 삶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최상의 것으로서 죽음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죽음이 이 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완전히 완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에서의 세 삶은 내적으로 봉합되어 있어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는 이야기의 구성과 주제적 결합에 필요한 외적 연결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야기에서 병든 귀족 부인을 실어 나르는 마부 세료가(Seryoga)는 길가 역에 죽어가는 마부로부터 부츠를 벗긴다. 죽어가는 마부는 더 이상 부츠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그 마부의 죽음 후에 그의 묘지에 쓸 십자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세 삶의 죽음들은 외적으로 연결되어있고 외적으로 인접해 있지만 서로를 비추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적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작가의 시야와 의식의 통합된 장에서 연합되고, 병치되고 의미화 된다. 세 삶과 죽음은 작가를 위해서만 서로를 비추는 것이다. 작가의 시야의 장이 인물의 시야의 장을 압도하는 것이다. 결국은 각각 인물의 삶과 죽음의 총체적 의미는 작가의 시야의 장에서만 나타난다. 결국 잉여적인 작가의 시야의 장은 완결적이고 단성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만약 세 죽음이 도스토예프스키 식, 즉 다성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었다면 어땠을까? 우선 그는 이 세 단면을 서로를 반추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는 각각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서로의 의식과 시야의 장에 반추하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작가는 종결의 말을 가지지 않는 대화의 참여자, 조직자로서 행동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작가와 인물은 동등한 위치에 자리 잡을 것이다. 즉 말은 이중으로 발화될 것이고 위대한 대화의 울림이 들릴 것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는 세 죽음을 묘사한 적이 없지만 자의식이 인간 이미지의 주요한 것이고, 자주적인 의식의 상호작용이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그의 세계에서는 죽음은 삶을 종결시키고 설명하는 어떤 것으로 작용할 수 없다. 그는 영웅의 죽음을 묘사하지 않고 문지방에 있는 영웅의 삶을 묘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웅은 내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채 머물 것이다. 이것이 다성적인 이야기의 전개 방법이다.

 

8. 소설적 이미지로서 대화적 개념

이 챕터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바흐친은 예술작품의 단성성을 계몽주의 시대에서 시작한 이성성과 연관시키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서의 영웅은 그 자신과 그의 당면한 환경에 대한 담론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담론이다. 즉 그는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대변인인 것이다. ‘지하생활자도 이미 이데올로기 대표자이다. 그리고 영웅의 묘사의 대부분은 자의식으로 남는다. 그래서 세계에 대한 담론은 고백적 담론과 합쳐진다. 결국 세계에 대한 진실은 인간성의 진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데뷔스킨(Devushkin)과 골랴드킨(Golyadkin)을 결정하는 자의식의 범주는 세계관에 대한 기본적 범주가 되었다. 결국 세계관의 가장 고귀한 원칙은 가장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관장하는 원칙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친밀한 경험들의, 개개인의 삶의 예술적 혼합이 이뤄지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생각으로서 의미화 하는 수용력을 보존하면서 누군가의 다른 생각을 대신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을 확정하거나 그것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보존한다. 그의 작품에서 이 생각은 예술적 묘사의 주제가 되고 그 스스로 그 생각의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식의 세계의 진정한 영역을 나타내고, 보고, 보이는 법을 알고 있다. 그 인식은 한 개인의 고립된 의식에 살 수 없고 그것이 다른 인식들과의 진정한 대화적 관계에 진입할 때만 형태를 취하고 발전하고 그것의 언어적 표현을 재생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해 보이는 것처럼 인식은 영원히 거주하는 권리를 가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심리 형성물이 아니다. 인식의 존재의 영역은 개인적 의식이 아니라 의식 사이에 대화적 교감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인식은 대화적으로 결합된 언어와 유사하다. 언어와 같이 인식도 다른 입장을 가진 목소리에 의해 듣게 되고 이해되고 대답되기를 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인식의 위대한 예술가이고 단성적인 인식을 거부하였다. 예를 들어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브(Raskolnikov)의 첫 번째 내적 독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폐쇄적인 의식 내에서 심리적인 진행이 아니다. 반대로 고독한 라스콜니코브의 의식은 다른 이의 목소리와의 투쟁의 장이 되었다. 최근의 일들이 그의 의식에서 반추되었고, 지금 없는 이들과 밀접한 대화의 형태를 취하였고 이 대화에서 그는 그의 생각을 분명히 하려 했다.

그리고 라스콜니코브는 그의 생각의 이론적 토대를 설명하는 신문 기사를 출판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디에도 이 기사를 독백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에는 그것의 내용과 포피리(Porfiry)와의 강렬하고 끔찍한 대화에서 라스콜니코브의 기본 생각을 접하게 된다. 포피리는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첫 번째 사람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도발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이 내적인 대화적 설명은 끊임없이 라스콜니코브에게 말해지는 질문과 그의 대답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그때 라스콜니코브는 스스로 그 기사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리고 그는 포피리의 도발적인 질문과 논평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다. 결국 라스콜니코브의 생각은 개인의 의식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의 상호 개인적인 지점에서 우리에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생각의 이론적인 면은 대화의 참가자에 의해 취해진 삶에 대한 궁극적 입장과 불가분하게 연결된다.

대화의 과정에서 라스콜니코브의 생각은 다양한 측면, 뉘앙스, 가능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른 삶의 입장들을 가지는 다양한 관계로 들어간다. 그것이 단일 의식에 맞는 일원론적이고 종결된 자질을 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모순적인 복잡성과 관념력의 살아있는 다양한 측면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이미지(an image of the idea)이다.

라스콜니코브의 그런 특성의 생각은 소냐(Sonya)와의 대화에서 또다시 드러난다. 그리고 라스콜니코브의 풍자적 이중인인 스비드리가일로브(Svidrigailov)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마침내 라스콜리코브의 생각은 소설 전체 도처에 삶의 다양한 징후와 연결되게 되었다. 그것은 그 징후들에 의해 검사받고, 입증되고, 확인받고, 거부되었다.

예술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철학자나 학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식을 만들었다. 그는 관념력으로서 삶을 꿰뚫는 인식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는 그의 시대를 위대한 대화로서 듣는, 개개인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 목소리들 가운데의 대화적 관계를 발견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크고 군림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약하고 완전히 나타나지 않은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도 이렇게 말했다. ‘총체로서의 현실은 즉각적으로 가까운 것에 의해 규명되지 않는다. 이 현실의 압도적인 부분은 아직 잠재해 있고 말해지지 않은 언어의 형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지금 주어진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 사이에 벌어진 투쟁으로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어진 생각이 변화하는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이행할건지, 어떤 방향을 취할 건지를 자주 예측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생각을 대화적으로 교차하는 의식의 경계선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 서로 소원하고 무지한 생각과 세계관을 묶고, 멀찍이 분리된 생각들을 확장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는 생각들 사이의 미래 대화적 접촉에 예견했다.

사상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서의 생각들은 예술적 이미지로 변모하였다. 그것들은 불가분의 사람들의 이미지의 결합으로 합쳐졌고 단성적인 고립으로부터 자유로워 졌다. 그리고 그것들은 완전히 대화적으로 되었고 다른 이미지 용어들과 동등한 것으로 들어왔다. 또한 그것들은 작가 생각을 종결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죄와 벌같은 단성성의 예외도 존재하지만 결국 예술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승리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을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형성적 이데올로기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데올로기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세계를 보고 묘사하는 원칙으로서 작용하고 작품 내에서의 추상적 인지와 생각의 기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성적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요인이 부족하다. 분리된 생각과 생각의 체계가 생기게 하는 대상의 통합된 세계이다. 보통의 이데올로기적 접근에서는 그것들 스스로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말하는 분리된 생각, 주장, 제안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세계에 동조하지 않는 자의 생각은 참고적 질서의 조직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이 통합 안에서 생각은 생각과 연결되고 생각은 다른 참고적 기반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은 전체로 이르는 체계 쪽으로 끌리게 되고 체계는 분리된 생각 밖으로 합쳐진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데올로기는 이런 면에서 분리된 생각도 체계적 통합에도 관련이 없다. 그에게 극히 불가분한 통합은 분리되고 한계가 있는 생각이나 제안, 주장이 아니라 관점의 필수적인 면이고 인간성의 필수적인 지점이다. 그의 모든 생각 안에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총체적으로 인간성이 주어진다. 그래서 생각의 연결은 필수적인 지점의 연결이고 인간성의 연결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생각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관점, 의식, 목소리 안에서 생각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표현되고 들리기 시작하는 방식으로 각각의 생각을 인식하고 만들려고 했다. 응결된 형태에서 생각은 시종일관 그의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전체의 정신적 지향을 압축하는 생각만이 그에게 예술적 세계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에겐 두 가지의 생각은 이미 두 사람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 속하지 않는 생각은 없고 모든 생각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by 그루브21 2014. 12. 7. 16:33

Chapter 2. Concerning the Relationship of the Basis and Superstructures (요약)

 

· 기계론적 인과관계

맑스주의의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몇몇 중요한 점에서 언어 철학의 문제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 문제가 토대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결정하느냐는 질문에 주어질 때 그 대답은 인과적으로결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 일반적이라 애매모호하다. 인과관계는 유물론적 변증법에 모순되는 기계론적 인과관계(mechanical causality)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계론적 인과관계에 적용의 범위는 자연 과학 내에서 조차도 그 영향력이 좁아지고 있어 그것에 대한 토의는 의미가 없다. 결국 기계론적 인과관계는 이데올로기적 문맥의 통일성과 진실성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인지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필수적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은 이데올로기 문맥 안에서 주어진 이데올로기적 변화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설명은 상호 반응하는 영역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변화가 이행하는 다양한 단계를 추적해야 한다.

 

·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

기호론적 이데올로기 물질의 구체적인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이데올로기적 현상 연구는 지나치게 단순화될 수 있다. 예컨대 단지 합리적인 면, 내용적인 면에만 설명되어진다면 그 측면은 바로 토대와 연결되게 된다. 예를 들어 상류 계급이 몰락했으니 문학에서 잉여 인간이 나타난다는 분석을 들 수 있다. 반대로 이데올로기 현상의 외적, 기술적 측면만 고려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방식들은 이데올로기 현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기계적이고 비구체적인 연구는 어떠한 인지적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잉여인간과 상류층의 경제 몰락과 연관 관계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기계적으로 잉여인간을 소설에 나타나게 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적 구조에서의 대상과 그 예술 장르 모두가 전체로서 설명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인지적 가치를 얻지를 못한다. 그래서 변화(경제적 변화와 잉여인간의 출현)들 사이에 고유의 법칙과 고유의 특성을 가진 질적으로 다양한 영역을 이해해야 한다. 분명히 잉여 인간은 소설과 독립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도, 소설의 다른 요소와 상관없는 나타난 것이 아니다. 잉여 인간과 소설은 각각 서로를 재구성시키는 원인이 되는 상호 의존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 The Material of the Word

이런 토대와 상부구조들 사이의 이런 복잡한 상호관계의 문제는 언어라는 질료(the material of the word)를 통해서 상당한 부분까지 설명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기호로서 언어는 토대에 의해 결정되고 생성과정에서 현실을 반영하고 굴절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가 순수한 기호가 아니라 사회적 편재성을 지니는 기호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모든 영역을 통해 흐르는 수많은 이데올로기적 가닥들이 언어 속에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사회 변화의 가장 민감한 지표이다. 그리고 언어는 이데올로기의 질적 위치와 형태를 완전히 가지고 있지 못한 변화의 양적 첨가를 일으키게 하는 매개의 역할을 수행한다. 언어는 일시적이고 연약하고 순간적인 사회 변화의 단면을 기록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물질화된 사회 심리

일반적으로 사회 심리로 칭해지는 것, 사회 정치적 체계와 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일시적인 연결로서 고려되는 것은 사실 언어적 상호 작용(verbal interaction)이다. 사회 심리는 어떤 내면의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 몸짓, 행동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 심리 안에 모든 것은 외적,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생산 관계와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 정치적 체계는 모든 언어적 상호 작용의 범위, 형태, 방법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언어적 상호 작용의 형태와 유형은 언어 행위(speech performance)의 형태와 주제를 이끌어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사회 심리는 다양한 언어 행위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 심리는 발화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발화는 마임, 몸짓, 연기 같은 기호적인 발현과 결합된다.

이런 언어적 상호 교류의 형태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의 모든 변동에 극단적인 민감성을 보이는 사회 환경의 조건과 밀접하게 작동한다. 그리고 언어적으로 물질화된 사회 심리의 내적 작용 안에서 후에 완전히 갖추어진 이데올로기 생산물로서 표현될 미세한 이동과 변화가 축적되는 것이다.

 

· 사회 심리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식

사회 심리는 두 가지 관점으로부터 연구되어져야 한다. 첫 번째는 내용의 관점이다. 즉 그 시점에 적합한 주제의 관점이다. 그리고 둘째로 언어 상호작용의 형태와 유형의 관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는 첫 번째 연구 관점에 국한되어져 왔다. 사회 심리의 구체적인 표현을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명확히 제시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회 심리의 명확히 기술된 표현의 물질적 형태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구체적인 형태의 문제는 인간 행동의 기호론적 의사소통의 형태와 관계가 있다. 이러한 형태의 유형 분류는 맑스주의에게 긴급한 사안이 되었다.

각각의 시기, 사회 집단은 인간 행동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 형태의 고유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어왔고, 지고 있다. 같은 종류의 형태들은 그에 상응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의사소통의 형태, 발화의 형태, 주제 사이에는 서로 맞물리는 유기체적 결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발화 형태의 분류는 언어적 의사소통(verbal communication)의 형태에 대한 분류에 의존해야만 한다. 후자는 생산관계와 사회 정치적 체계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어진다. 다시 말해서 언어적 상호교환 속에 계급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과 의사소통의 계급적 조직체가 발화 형태에 큰 영향을 구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기호와 존재의 관계

모든 기호는 상호 작용의 과정 안에서 사회적으로 조직된 사람들 사이의 구조물이다. 그래서 신호의 형태는 무엇보다도 관련된 참가자의 사회적 조직체와 상호작용의 즉각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이러한 형태가 변하면 기호도 변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형태와 기호의 관계를 연구하는 일은 이데올로기 연구의 중요한 임무중 하나가 되어야한다. 기호와 존재 사이의 관계의 문제도 이런 방식만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그래야만 존재에 의한 기호의 인과적 형성 과정이 존재에서 기호로 이행하는, 기호 안에서 존재의 진정한 변증법적 굴절의 과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방법론적 전제 조건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1. 이데올로기는 기호의 물질적 실재에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의식이나 다른 모호한 영역에 위치시키면 안 된다.)

2. 기호는 사회적 상호 교류의 구체적인 형태로부터 분리되면 안 된다. (기호는 사회적 상호 교류 밖에서는 단지 물리적 인공물에 지나지 않는다.)

3. 의사소통과 의사소통의 형태는 물질적 토대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 기호의 내용과 평가적 강세

사회적 상호교류를 통해서 발생하는, 언어적 기호를 포함해서, 모든 이데올로기적 기호는 주어진 시대, 주어진 사회 집단의 사회적 시야(social purview)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다뤄왔던 방식과는 다른 측면인 기호의 내용과 그 내용을 모두 수반하는 평가적 강세(evaluative accentuation)에 대해 다룰 것이다.

사회 발전의 모든 단계는 사회적 관심에 접근할 수 있고 그 관심에 의해 평가적 강세를 부여받는 항목의 영역(circle of items)을 가지고 있다. 그 영역의 항목만이 기호의 형성을 이룰 수 있고 기호적 의사소통에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가치적 강세가 부여된 항목의 영역을 결정하는가?

어떤 항목의 체계에서, 그것이 현실의 어떤 영역에서 오던 간에, 집단의 사회적 시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데올로기적 기호론적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항목은 특정한 집단의 존재의 사회 경제적 전제 조건과 연관되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간접적이라도 집단의 물질적 삶의 토대와 연결되어야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개개인의 선택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기호는 개개인 간의 창조물이고, 사회적 환경 내에서의 창조물이다. 그래서 항목은 처음에는 상호 개인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그런 다음 기호 형성에 대한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가치를 획득하는 것만이 이데올로기의 세계에 들어 갈 수 있고, 거기서 자기 자신을 형성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개인의 목소리, 개개인의 유기체에 의해 생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데올로기적 강세는 사회적 강세이다. 사회적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승인 덕분에 이데올로기적 물질 안에서 외부적 쓰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 기호의 대상이 되는 독립체를 기호의 주제라고 부르도록 하자. 각각 완전히 갖추어진 기호는 그것에 맞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언어적 행위도 그것에 맞는 주제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적 주제는 언제나 사회적으로 강세화 된다. 이데올로기 주제의 사회적 강세는 개인의 의식에 스며들고 개인의 의식은 사회적 강세를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세의 원천은 상호 개인적, 즉 사회적인 것이다. 동물의 울음, 고통에 대한 반응은 강세가 존재하지 않는 순전히 자연적 현상이다.

 

· 이데올로기적 신호의 주제와 형태 사이의 관계

이데올로기적 신호의 주제와 형태는 불가분하게 서로 엮여있고 추상적으로만 분리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창조물은 같은 기반에 나왔고 본질적으로 같은 것의 두 가지 측면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 통합되는 과정, 즉 주제와 형태의 탄생은 언어라는 질료에서 가장 잘 이루어진다. 이데올로기적 생성의 과정은 언어에서 두 가지 측면으로 반영된다. 원시인의 구분되지 않는 실제의 덩어리를 사회적 시야로 밝히는, 의미론적 고생물학에 의해서 연구되어지는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거시적인 방법과, 동시대의 뼈대에서 구성되는 것을 밝히는 미시적 방법으로 나뉘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 기호 안에서의 계급투쟁

기호에서 반영된 존재는 단지 반영된 것이 아니라 굴절된 것이다. 이 존재의 굴절은 이데올로기적 기호에서 어떻게 결정되는가? 동일한 기호 공동체 내에서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사회적 이해관계의 교차, 즉 계급투쟁에 의해서 결정된다.

계급은 이데올로기적 의사소통을 위해서 동일한 기호 장치의 사용자의 총체인 기호 공동체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다양한 계급들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들 각각은 다른 강세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다른 강세 체계는 계급투쟁을 대변하고 있다. (Sign becomes an arena of the class struggle. 23p)

이 이데올로기적 기호의 사회적 다강세성은 매우 중요하다. 기호가 활력과 패기 그리고 발전을 위한 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이 다강세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기호는 필연적으로 힘을 잃고 우화의 수준으로 퇴보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데올로기적 기호를 생생하고 살아있게 하는 것은 또한 그것을 굴절되고 왜곡된 매개물로 만드는 것이다. 지배 계급은 이데올로기적 기호에게 초계급적, 영원한 특징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기호 안에 일어나는 사회 가치 판단 사이에 존재하는 투쟁을 없애려고 애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기호를 단일한 강세를 가진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각각의 살아있는 이데올로기적 기호는 야누스처럼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대에서는 이 모순적인 면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기호는 언제나 어제의 진실을 오늘의 것으로도 만드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적 기호를 굴절하고 왜곡하는 방식인 것이다.

· 결론

지금까지 상부 구조와 토대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언어적 기호의 물질화는 우리를 토대부터 상부구조로 이르는 과정인 변화의 변증법적 과정의 연속성을 완전히 따를 수 있게 하였다. 이데올로기적 현상에서 기계론적 인과관계의 범주는 언어 철학의 토대에서 아주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by 그루브21 2014. 12. 7. 13:42

Chapter 1 : The Study Of ideologies and Its Immediate Tasks (요약)

 

· 이데올로기 일반 이론과 개별 현상들 간의 괴리

Literary scholarship is one branch of the study of ideologies. On the basis of the single principle it uses to understand its object, and the single method it uses to study it, the study of ideologies embraces all areas of man's ideological creativity. (3p)

이데올로기 연구의 토대는 맑시즘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이데올로기의 창조물 즉 과학, 예술, 윤리, 종교 등의 개별 항목들의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도 초기 단계이다. 왜냐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에 대한 일반 이론과 개별 이데올로기 현상에 대한 기본적이고 구체적인 연구 사이에 변화하고 흐릿한 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별 현상들을 사회학적 이해 없이 경제적 토대에 인위적으로 껴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영역들은 각각 언어, 언어에 대한 형태와 장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굴절에 대한 고유의 법칙을 지니고 있다. 물론 맑시즘은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지우려는 것은 아니다. 예술, 과학, 윤리, 종교의 개별성은 당연히 상부구조로서의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을 모호하게 만들면 안 되지만 또한 그 개별성도 그 법칙으로부터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맑시즘을 토대로 한 개별적이고 사회학적인 방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구조들의 세부 사항과 미묘함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우리는 이데올로기 체계의 특징과 질적 특이함을 이해하고 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문화 철학, 실증주의, 생물학, 경험론, 관념론을 기반으로 한 서유럽의 학문으로는 이러한 정의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이들은 언제나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이데올로기 현상에는 무력하기 때문이다.

 

· 관념론적 문화 철학과 인본주의적 실증주의의 위기

현대 서유럽 학계에서조차도 현실로부터의 문화 철학의 유리와 실증주의, 자연주의로부터의 부조리 양쪽 모두에 대한 불만족이 존재한다. 이는 어떤 종류의 통합의 부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려는 욕구가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에 부합하여 유럽 형식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유럽 형식주의는 총체적 일반화와 예술 개별 현상에 대한 무관심을 가지고 있는 실증주의와 관념론적 철학의 미학에 적대적이었다. 보슬러 학파 (The Vossler school)도 이와 비슷한 언어학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관념론적 철학을 언어와 언어의 역사의 구체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시도를 하였다. 문학사에서도 같은 경향이 진행되었다. 이런 경향들은 현상학과 직관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철학의 전형적인 징후는 하만(Hamann)의 저서 Ästhetik 등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 책들은 기존의 미학 책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철학 체계의 일반적인 요구보다는 예술 학문 자체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와 요구로 진행하려는 욕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네오 칸티즘의 추상적 관념 이론의 시대는 힘을 잃었고 변동성과 다양성에서 삶과 역사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이해하려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The "will to system" has obviously been replaced by the desire to master the concrete world of things and events without losing their living and meaningful unity. (6p)

 

우리는 유물론적 변증법만이 관념론과 실증주의의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부르주아 세계관에 절대적이었던(tertium non datur) 관념론과 실증주의는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불가사의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신비스러울 뿐인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It is necessary to fill the gap between the general doctrine of ideological superstructures and the concrete elaboration of particular problems. (6p)

다시 말해 유물론적 변증법이 왜 이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현상에 적용시켜 입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적용은 사회학적 견지를 유지해야만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사회학으로부터 숨기 쉬운 개별성도 무시해선 안 된다.

 

이데올로기적 모든 창조물(예술 작품, 과학적 성과, 종교적 상징과 의식)은 중요성, 의미, 내적 가치를 물질적 존재와 행동에서 구현하고 있다. 철학적 관점, 믿음 같은 것조차도 언어, 행동, 옷 등을 통해 물질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언어는 기호적 물질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물질과 그것의 조직화와의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연결은 더욱 더 유기체화 되었고 필수적으로 되었다.

현재 학계는 단지 개인의 이데올로기적 가치의 창조와 이해에 대한 생리학적 과정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고립된 개인은 이데올로기를 창조하지 못하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데올로기적 창조와 이해는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부르주아 학계는 물질적 환경의 복잡한 연결을 개인의 의식과 대응하는 의미라는 인위적인 연결로 대치시켰다. 의미와 의식은 부르주아 이론과 문화 철학의 기본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관념적 철학은 유물론적 실체로부터 자신들의 추상적 이론을 지키기 위해 의미와 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초월적 의식 혹은 일반적 의식이라는 개념을 상정하였다.

(이런 부르주아 학계 때문에) We are most inclined to imagine ideological creation as some inner progress of understanding, comprehension, and perception, and do not notice that it in fact unfolds externally, for the eye, the ear, the hand. It is not within us, but between us. (8p)

 

· 이데올로기 연구에서의 당면한 두 가지 문제들

이데올로기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에서 완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인식과 연구의 통합되고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접근 가능하다.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인간의 사회적 환경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현상의 물질적 존재들은 물리적이거나 자연적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생리학적 혹은 생물학적 개인은 이데올로기적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사회적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다. 한 개인 내의 사색, 감정 혹은 쾌락은 이데올로기적 현상이 아닌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관적 심리학과 생리학, 생물학은 이데올로기적 대상의 의미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 연구에 두 가지 기본 문제를 제공한다.

(1) problems of the characteristic features and forms of organized ideological material as meaningful material; (2) problems of the characteristics and forms of the social intercourse by which this meaning is realized. (9p)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은 이데올로기적 실제의 반영과 굴절에 대한 맑스주의 교리에 완전성과 정밀성을 제공할 것이다.

 

· 조직화된 이데올로기적 물질의 문제

The primary problem in the first set is the problem of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organized ideological material, i.e., the problem of the characteristics of ideological object as opposed to (1) physical, natural bodies and (2) to the instruments of production and (3) to consumer goods. (9p)

자연주의적 실증주의와 기계론적 유물론은 이데올로기적 대상과 첫 번째 유형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곳에서 자연적 기계적 규칙성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도로 발전된 과학, 문학 같은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데올로기적 창조물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때때로 침투하는 맑스주의를 보이는 실용주의적 실증주의는 두 번째 유형과의 차이점을 무시한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적 대상을 생산 기능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생산 기능은 특정한 의미성이 부족하다. 그것은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반추하지 않는다. 다만 외적인 목적을 지닐 뿐이다. 이런 실용주의의 관점의 허점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리글(Riegl)은 예술 작품을 실용적 목적, 날 것의 재료 그리고 기술 간의 투쟁으로 발현된 명확하고 의도적인 예술 의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The concepts of artistic volition (Kunstwollen : 예술 의지) and the "resistance of the material," to which are added utilitarian purpose (if there is one) and technique, are presently the basic concepts of West European formalist art scholarship. (10p)

기술은 창조에 대해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예술에서 오직 변화시킬 수 있는 인자를 가진 것은 예술 의지뿐이다. 예술 의지는 무기적 간결함, 몸에 대한 진실성, 유기체보다는 무기체 형식의 선호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예술 의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 실용주의적 실증주의는 현대 유럽 예술 학문에서 신뢰를 잃고 말았다. 이데올로기적 대상의 특수성과 이데올로기적 유기적 물질은 모든 곳에서 이해되고 알려졌다.

물론 맑스주의는 이 예술 의지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맑스주의는 실증주의에 대한 현대 예술 학계의 비판을 받아드려야 한다. 그리고 생산 기능으로부터 의미를 생산하고 반영하고 굴절하는 이데올로기적 대상들 사이의 차이를 면밀히 분석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비재와의 유사성으로 이데올로기적 대상을 보는 이론이 널리 퍼졌다. 이 접근 방식은 부패한 부르주아 작품을 실질적으로 관통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것에는 이데올로기의 쾌락주의적 이론과 부합됐다. 개인의 쾌락과 경험의 대상에 대한 예술 작품의 개념은 필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현상을 개인 소비 생산과 일치시키는 경향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데올로기적 생산과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은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고립되고 생리학적 유기체 내에서 인식되는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볼 때 아무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음식을 섭취하거나 옷이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은 이데올로기적인 현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개인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신조는 맑스주의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맑스주의에 의해 거부된 이 신조는 형식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물질과 의미

이데올로기적 대상을 자연적 대상, 생산 기능, 소비재와 대치되는 것으로 보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한 결론 후에 우리는 이데올로기 자체의 세계를 더욱 더 연구해야한다. 이런 연구는 추상적 의미로부터가 아니라 구체적인 유물론적 실제, 사회적 의미의 관점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관점의 연결은 매우 유기적이다. 예를 들어 예술의 의미는 물질적 몸체의 세부 사항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대체가 가능한 과학적 작품과는 달리 예술 작품은 최소한의 요소를 제외하고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이는 특정한 몸체와 의미가 필연적으로 엮여 그것만의 예술적 의미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어느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의미만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수행하는 사회적 연결은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조직되고 이끌어진 행동과 상호작용의 합은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의 두 번째 문제인 이데올로기적 상호 교류의 형태와 유형의 문제는 거의 연구가 안 되어졌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삶을 의미에 병치된 하나의 의식으로서 보는 관념론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이는 이데올로기적 상호 교류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과학적 상호 교류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예술적 상호 교류의 형태는 외부의 상황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양해지고 달라진다. 예술적 상호 교류의 형태는 예술 작품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서유럽 예술 학회의 연구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청중, 독자 같은 외부적 상황이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데올로기적 환경

우리가 지금까지 열거한 문제 말고도 현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맑스주의 연구의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 환경의 문제라고 부른다.

사회적 인간은 이데올로기적 현상에 둘러싸여 있다.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구성한다. 인간의 의식은 바로 이 환경에서 생동하고 발전한다. 그런데 인간의 의식은 존재들을 직접으로 접촉하지 않고 둘러싸여 있는 이데올로기 세계의 매개를 통해 접촉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환경은 개개인의 의식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통해서만이 사회 경제적, 자연적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환경은 끊임없이 활발한 변증법적 생성의 과정에 있다. 그래서 반박은 언제나 존재하고 새로운 것이 다시 생성된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독특하고 완전히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존재한다. 이런 특성을 지니는 이데올로기적 환경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한다. 그리고 의식과 행동은 또한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결정하는 순환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환경에 대한 개념이 맑스주의에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맑스주의 말고 다른 사상들 즉, 문화 철학, 실증주의, 자연주의, 실용주의는 이 이데올로기적 환경에 대한 개념을 왜곡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맑스주의자들 마저도 이데올로기적 환경의 중요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데올로기 세계의 개별 존재가 경제적 요인에 의해 직접적으로 결정된다는 순진한 생각에 빠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맑시즘 이데올로기 연구가 직면한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이 문제들에 대한 철저하고 깊은 완성만이 맑시즘의 사회학적 방법 내에서 요구되어지는 파생으로 이끌 것이고 이데올로기적 현상의 개별 구조의 세부사항을 숙달하게 만들 것이다.

by 그루브21 2014. 12. 5. 19:24

Chapter 2 : Two trends in Modern Psychology (요약)

 

This motif runs throughout the psychoanalysts' theories at all levels. (17p)

이 동기는 19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생철학(Philosophy of Life)의 동기를 말한다. 이 생철학의 동기를 생물학적 생이 철학 체계에서의 중심을 차지, 의식에 대한 불신, 객관적 사회 경제 범주를 주관적 심리적 생태적 범주로 대체하는 것으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Nevertheless, a fairly widespread opinion has it that, notwithstanding the faultiness and untenability of its basic ideological motif, psychoanalysis still does contain a sound, scientifically valuable core, which is, namely, its psychological theory. (17p)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르주아 세계의 붕괴 및 퇴폐의 징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프로이트주의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동기는 역사에 대한 두려움, 심연의 유기체에서 사회·역사적 측면을 초월한 세계를 추구하는 현대 부르주아 철학의 동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정신 분석학의 심리학적 이론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생각의 지지자들은 이 이론이 다른 철학적 세계관과 충분히 공존할 수 있고, 맑시즘이 심리학에게 하는 요구에 가장 부합된다고 말한다.

 

· 현대 심리학의 주요 경향 (실험 심리학과 객관적 심리학)

At the present time, both in Europe and here in the USSR, two trends in the study of the psychical life of humans and animals are engaged in spirited controversy. This is the controversy between objective and subjective psychology. (18p)

대표적 주관적 심리학으로는 실험 철학(Experimental Psychology)을 들 수 있고 객관적 심리학은 반사학(Reflexology)과 미국에서 유행하는 행동주의(Behaviorism)을 들 수 있다. 주관적 심리학과 객관적 심리학을 결정짓는 것은 인간의 두 가지 심리 생활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인간의 두 가지 심리 생활은 생각, 감정, 욕구 같은 정신적 경험과 타 유기체에 반응하는 외적인 표현을 말한다. 전자는 주관적 심리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물론 이제는 외적인 표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순수한 주관적 심리학자는 없다. 외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에 의해 보충되고 조절되는 이 주관적 심리학을 실험이라는 의도적인 장치로 풀어내는 것을 실험 심리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험자의 관찰보다는 피 실험자의 자기 관찰이 더욱 중요시되기 때문에 실험 심리학은 내적 체험을 중시하는 주관적 심리학인 것이다.

반면에 실험 심리학이 중시하는 내적 체험에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객관적 심리학자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피 실험자의 내적 체험이 실험자의 외적 이해의 진실성과 일관성을 위태롭게 한다고 문제 제기한다. 이들은 삶에서 의미를 가지는 모든 것은 외적인 물질적인 양으로 제시되어야 하고 순수한 물질적 변화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순수한 물질적 양이 행동이라는 것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행동만이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 심리학이 중시하는 내적 관찰은 심리학의 객관성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객관적 심리학자들도 실험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피 실험자의 내적 관찰도 외적 관찰의 언어로 번역하여 통일성과 진실성의 약화를 방지한다.

내적 체험을 외적인 경험으로 바꾸는데 부합되는 것은 언어이다.

 

Verbal reaction is a phenomenon of the highest complexity. It consists of the following components:

1. The Physical sound of articulated words;

2. Physiological processes in the nervous system and in the organs of speech and perception;

3. A special set of feature and processes that correspond to the "meaning" of a verbal statement and the "understanding" of that meaning by another person or persons. (21p)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세 번째이다. 이것은 생리학적 유기체의 한계의 초월과 유기체 간의 상호 작용을 수반하는 사회학적인 특징을 띈다. 이 상호 작용에서 수반되는 시각, 운동, 청각 반응의 연결은 지극히 객관적이다. 이는 이 연결을 형성하는 방법과 수단이 외적 체험과 연구의 객관적 방법을 원칙적으로 받아드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언어적 특징은 외적 발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내적 발화도 포함이 된다. 내적 발화도 물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객관적 심리학자들은 피 실험자의 내적 체험을 외적이든 내적이든 언어적 등가물로 대치할 수 있다면 외적·물질적 경험의 진실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심리학에 대한 맑시즘의 요구

Marxism is far from denying the reality of the subjective-psychical. Such a thing does exist, to be sure, but under no circumstances can it be divorced from the material basis of the organism's behavior. (21~22p)

심리적인 것은 유기체가 갖는 특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것을 물질과 대등하게 대치시킬 수 없다. 반대로 물질의 조직화와 복잡화를 통해 심리적인 것이 생성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물질적이다. 이런 점에서 맑시즘은 객관적 심리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맑시즘(변증법적 유물론)은 객관적 심리학자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중요한 요구를 한다. 인간 심리학은 사회학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삶의 모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행위는 사회적 환경의 조건에서의 자극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적 발화 때문에 인간의 행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언어적 반응의 형성도 사회적 환경의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심리학은 객관적 방법뿐 만아니라 사회학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 정신분석학과 맑시즘

Freudians, as indeed Freud himself, look upon the Freudian doctrine as the first and only attempt at constructing a truly objective, naturalistic psychology. (22p)

그리고 러시아 심리학, 철학 저작들은 프로이트의 의견에 동조하고 정신 분석학이야말로 맑시즘의 요구에 가장 부합되는 이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객관적 심리학과 맑시즘 대표자들이 이에 다른 의견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런 반론은 그것의 논지를 더욱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객관적 심리학이 특히 조심해야 할 위험이 있다. 이는 순진한 기계론적 유물론이다. 이는 자연과학보다는 생물학, 특히 심리학에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The fact is that critical analysis of Freud's psychological theory will bring us directly in contact with precisely the issue that is of utmost importance and difficulty in human psychology-the issue of verbal reactions and their meaning in human behavior as a whole. (23p)

성적인 영역에서 많이 설명하는 프로이트는 이런 어려움을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으로 해석을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충분한 예를 제시함으로서 자신의 이론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그는 모든 현상의 사회학적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개개인의 유기체와 심리라는 협소한 테두리로 가두려 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이것은 사회적 진공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 성질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외적인 객관적 관점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고 자기 관찰적·주관적 관점으로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 중립성과 프로이트주의

From what we have already said by way of preliminary orientation, the reader can cleary see that the psychological, that is, the technical-scientific, side of Freudianism is by no means neutral with respect to its general ideological and class position-a position so vividly expressed in its basic philosophical motif. (25p)

이런 프로이트주의의 비중립성과 마찬가지로 모든 개별 과학의 중립성은 불가능하다. 모든 과학적 이론은 세계관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다시 말해 계급투쟁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과학적 이론의 주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급투쟁에서 집단이 갖는 기본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론은 그것이 반영하는 객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를 반영하는 양면 거울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주의의 이 양면이 동시에 연구되어져야 한다.

 

by 그루브21 2014. 12. 5. 17:15

 

뮤직 디톡스 at 코엑스 아트홀

by 그루브21 2014. 8. 24. 08:57

 

 

My Romance by The New Jazz Band

at 서울 광장

by 그루브21 2014. 8. 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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